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사람들
친가 쪽 어른들 중 아직도 전화와 카톡, 문자로 안부를 묻는 척하며 나를 저울질 하거나 조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 5년 만에 만난 고모가 "연봉이 얼마 정도 돼?"라고 묻지를 않나, "명품 가방 들었네?돈 많이 버나봐", "너가 참 공부를 잘 했는데 제일 안 풀렸어. 제일 안 됐어" 라는 식이다. 내가 너무 막돼먹게 얘기하는 건가 싶기도 한데 나로서는 이들을 큰아빠, 작은아빠, 고모 라는 식으로 부르기도 너무 어색하고, 그렇게 불러야 할 때마다 온몸의 세포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만 같다. 내가 어른들에게 '네네'하는 스타일이어서 다들 나에게 연락을 자주 하는데 연락이 올 때마다 받아주는 게 정말 괴로웠고 최근에는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젠가는 어른들 형제자매 간에 안부를 전하는 단체카톡방에 나를 초대하면서 같이 사는 이야기를 전하자는 둥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이 많았다. 그저께도 어이없는 카톡을 하나 받았는데 정말 범버카 같은 걸 타고 다 한 번 들이받았으면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샤우팅했다.
과연 친척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다보니 '친척'이라는 단어가 '가족'이라는 말보다 더 친한척 하는 것 같아 그것부터가 너무 소름돋게 싫다. 사전적으로는 친할 친, 겨레 척.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친족관계라고 정의한다. 친하지도 않은데 계속 '친하다'고 강조하는 것 같아 단어부터 거부감이 든다. 내가 내린 친척의 정의는 이러하다.
친하지도 않은데 혈연과 혼인관계를 명분으로 친한 척 하고 엄청난 관계가 있는 척 하는 사람들. 혹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다 아는 척 하는 사람들. 특히 친척 어른들 중에는 밖에서는 별 볼 일 없는 패배자인데 조카들이나 형수들 앞에서는 권위를 내세우면서 어른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우리 집에만 국한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친척들이 과연 다른 집의 조카들이 잘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특히 본인의 자식들보다 형이나 동생의 자식들이 더 잘 나가면 시기, 질투나 하다못해 본인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엄청 하는 것 같다. 이것도 또 우리 집에만 국한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형제, 자매 간에 갖는 라이벌 의식이나 크고 작은 긴장관계가 있다는 걸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내가 어릴 적 내 동생과 겪었던 갈등을 내 딸들의 다툼을 보면서 비로소 객관화하고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형제간의 열등감이나 기대감, 경쟁의식 등이 다음 자식 세대가 생겨나면 마치 세포가 분열하여 증식하듯이 증폭되고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어른들이 너무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취미생활을 갖고 본인들의 가정에나 좀 충실했으면 좋겠다. 감나라 배나라 남의 집에 간섭하지 말고.
어릴 적 이 친척어른들에게 받은 새뱃돈이나 용돈들을 뱉어내 버리고 싶다. 35년이 지나서 이런 식으로 나를 옭아맬 줄 알았다면 그 때 그 용돈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건 그렇고 '친척'이라는 말 말고 뭔가 다른 단어를 만들어야 할 거 같은데. 호칭도 미국처럼 그냥 이름을 불러야지. 왜 그 사람들한테 '아버지', '어미모'를 갖다 붙여. 생각할 수록 진짜 이해가 안되네.
너무 답답해서 챗GPT한테 물어봤는데 미국에도 친척 때문에 갈등들을 많이 겪는다고, '아, 크리스마스 때 또 그 toxic relative를 만나야 하네' 라는 식으로 푸념을 한다고 한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하는 걸까. 암튼 이건 정말 사회학적으로 풀어내야 할 큰 숙제다. 대한민국에는 친척이라는 이름의 나비효과가 사회경제적으로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