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싫지만 방산주는 사고 싶어

주식으로 스트레스 받다가 대상포진 걸린 어느 주부의 이야기

by 요다멜리


이란과 미-이스라엘 전쟁에 매일 촉각이 곤두서 있는 요즘이다. 자다가 일어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은 또 무슨 코멘트를 소셜에 올렸을까 하고 생각한다. 사실 국제 정세와 정치에 문외한인 내가 이렇게 매일같이 뉴스를 찾아보는 건 결국 내 주식 계좌가 오늘은 어떻게 될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주식이 아니었으면 전쟁에 대해서도 금세 무뎌지고 그닥 신경을 안 쓰고 오늘 먹을 점심메뉴에 온전히 내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으리라.


코스피 시장의 엄청난 상승장과 변동성을 겪으면서 지난 몇 달간 난 불면의 밤을 보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난 달에는 결국 대상포진에 걸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는데 나는 그 병의 원인이 분명 주식 때문이라 생각한다. 요즘 나는 경단녀로 그 어느 때보다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그닥 아이들 교육이나 살림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데, 극심하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 걸린다는 대상포진에 걸린 것이다. 남편과 '백수가 과로사한다'며 웃었지만 주식이 그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란 걸 뼈저리게, (대상포진의 아픔을 겪으며) 온 신경세포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주식이 주는 스트레스를 하나하나 열거해 보자면,


하나, 쉬는 시간이 없다

20년 넘게 주식 투자를 해 왔지만 할 일 없이 백수로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에는 직장인이다보니 항상 업무나 육아에 바빴고, 주식계좌를 들여다 볼 시간도 매매할 시간도 부족했었다. 장이 다 끝나고 나서야 퇴근길에 한 번씩 네이버에서 차트를 확인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할 일이 없다보니 HTS의 주식창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게다가 유튜브에서 해주는 주식 관련 방송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증권사 객장에서 전광판 보며 수기로 주문하던 때도 있었다는데, 요즘은 너무 실시간으로 정보들이 넘쳐나고 어디서든 그걸 핸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독이 되었다. 게다가 미장에도 같이 투자하다 보면 국장이 끝나면 바로 미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KRX를 24시간 여는 잠들지 않는 국장이 시작된다니 벌써부터 토가 나온다. 나같은 사람들은 종가만 확인하거나 주식 가격 알림 설정 등으로 주식창 보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기만의 시스템 세팅이 필요하다. 아니면 강압적으로라도 다른 일을 해야 함으로써 주식창을 덜 보는 것이 오히려 건강과 생활뿐만 아니라 수익에도 도움이 된 것 같다. 주식창을 보다보면 뇌동매매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둘, 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같은 신기루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안 샀던 주식이 상한가를 간다거나 어제 손해 보고 팔았던 주식이 상한가를 가는 걸 보게 되면 마치 "저 수익을 다 가질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대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고 이런 후회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서 다른 생산적인 생각들을 방해하고 마치 영혼을 빼앗긴 듯 살게 되는 것이다. 하락장도 괴롭지만 상승장에서도 이런 자괴감은 더욱 심했다. 더 매수할 껄, 더 높은 가격에 팔 껄, 이거 말고 저거 살껄...등등 나만 빼고 다들 돈 벌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셋, 전쟁이 싫어도 방산주를 사고, 소설책을 읽을 시간에 게임주를 들여다 본다

난 하물며 AI도 반기지 않는 게으른 아날로그 지상주의자 인데 AI관련 빅테크, 심지어 우주 산업까지 유튜브로 기웃기웃 들여다 보고 있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반면에 내가 진짜 갖고 있는 내 관심사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예를 들어 문학책을 본다거나 외국어 공부를 한다거나 독서 중 좋은 글귀를 필사 하는 게 원래는 내 생활에서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간들에 주식 관련 공부를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패턴과 내 뇌의 모드가 완전 바뀌어 버린 것이다. 유튜브의 알고리즘도 이런 내 관심사의 변화를 즉각 반영하여 주식 관련 컨텐츠들이 다 세팅되어 버렸다. 결국 원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완전 등한시하고 계속해서 주식 관련 뉴스만 찾아보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 가치관과 이율배반적인 선택을 하고, 순전히 내 계좌의 수익을 위해 그 기업이나 산업의 성공을 바란다는 게 인간과 자본주의에 대해 씁쓸함을 남기고 나답게 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코로나 때에는 코로나 검사키트나 백신 관련 주식을 사고 있다가 확진자 수가 늘면 오르는 주가에 기뼈하고 코로나가 해결되면 아쉬워하게 된다거나, 방산주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전쟁 소식에 '오, 방산주 오르겠다'하며 부푼 기대감을 갖게 되는 형국인 것이다.


어제는 책장에 꽂혀 있던 '위대한 멈춤'이라는 책을 무심코 열었는데, 마침 펼친 그 페이지에 화가 고갱의 이야기가 나왔다. 고갱이 원래 증권회사 중개인이었다가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직장을 잃고 그림에만 전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장과 안정적인 수입을 잃었지만 그동안 직장 때문에 전념할 수 없었던 그림 그리기에 오롯히 시간을 쓰면서 예술가로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주식을 해야 하는 삶,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아무튼 엄청난 변동장을 겪으면서 나는 나를 발견하고 내 중심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한번 깨달았다. 어느 날에는 주식시장이 하나의 인생 서사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도 느꼈고 손가락 하나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들도 맞딱뜨렸다. 괴롭고 부끄럽고 나를 다잡고 싶어서 매일매일 일기가 저절로 써졌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일기가 되었지만, 매일 같이 어리석었지만, 그래도 나름 치열하게 경험했고 뼛속 깊은 교훈을 얻었음에 감사하기로 한다.



P.S 고갱이 그림에 집중한 그 시간 덕분에, 본인의 화풍을 정립하고 예술가로서 훗날 인정받게 되었지만 사실 주식시장을 떠나 그림에만 전념한 그의 삶이 그닥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가족들에게 거의 버림받다시피 했고, 방랑과 가난 속에서 허덕였다.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게 제일 무난하고 평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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