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자기야! (自己)
(내가 말하는 '자기'는 '그 사람 자신'을 뜻하는 단어야.)
그제 새벽부터 목이 결렸어.
<목이 결리다를 풀이해 보면?>
-척추동물의 머리와 몸통을 잇는 잘록한 부분이 숨을 크게 쉬거나 몸을 움직일 때에, 뜨끔뜨끔 아프거나 뻐근한 느낌이 든다.
목에 담이 왔어.
목에 담이 걸렸어.로 쓰다가 목이 결리다는 말이 가장 알맞겠다 싶었어.
'담'은 아무리 찾아봐도 내 증상과 비슷한 의미를 못 찾겠더라.
난 왜 이렇게 단어와 의미에 집착할까?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썼던 말들이 이제는 좀 구체적으로 궁금해지더라.
성장하고 있나 봐.
궁금한 게 많아지고 있거든.
나이 들면서 궁금해지는 게 없고 세월아 네월아 할 때가 있잖아?
그땐 세상 모든 게 허무하고 부질없어 보였거든.
요즘은 다시 궁금해.
아주 사소한 단어의 뜻조차도 말이야.
어학사전을 찾아보면 내가 알고 있던 느낌보다 더 깊이 있거나 더 가볍거나 놀라운 뜻이 숨어있더라.
그래서 한 번씩 찾아봐.
특히 한자로 된 단어의 뜻풀이가 더 그런 것 같아.
내가 궁금해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기도 해.
티브이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보다가
'우와!' 할 땐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찾게 될 때야.
기분이 너무 좋더라.
그러다 윤소정 님을 알게 되었지.
이건 내일 알려줄게.
말하자면 길어.
아무튼 아직도 난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고 죽을 때까지 누군가와 주고받으며 살겠지?
중년이 되니 나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더라.
내가 알게 된 것들이 별 것 아니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본다면 왠지 좋아할 것 같거든.
나도 공유하면서 되새기고 말이야.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인 것 같아.
'주는 어른이 되는 것.'
근데
어제는 목을 사용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것도 아래를 보는 것도 위를 보는 것도 눕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다 힘들었어.
오늘은 어제보단 좀 낫지만, 여전히 쉽진 않아.
살아보겠다고 유튜브에 '목에 담 걸렸을 때'라고 검색했지.
열심히 스트레칭 따라 했어.
의사 유투버가 그러더라.
"빨리 낫고 싶어서 무리해서 스트레칭하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런 것 같아.
무리하면 탈 나.
오늘은 무리하지 않을게.
자기도 무리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