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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Aug 29. 2019

#35. 저기, 브레이크 좀

 택시 기사님이 차를 멈출 때마다 브레이크를 꽉 밟더라고요. 빈대를 눌러 죽이듯, 내용물을 다 뱉어낸 페트병을 찌그러뜨리듯 말입니다. 브레이크를 꽉 밟을 때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저는 곧 토하려는 사람처럼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진자운동을 반복했죠.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올랐어요. 이렇게 무중력의 공간으로 떠나게 되는 걸까요.


 초보운전입니다. 택시 기사님이 아니라 제가요.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면허를 취득했지만, 운전할 차가 없었습니다. 면허만 따면 차를 주겠다던 친척 형과 이모의 약속을 굳게 믿은, 민간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저는 사회가 얼마나 혹독하고 무서운 곳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겠다던 차는 지금도 친척 형이 잘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속이 쓰리더군요. 가수 박진영의 노래를 속으로 불러 봅니다. '네가 타는 그 차, 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요즘은 회사 외근 업무가 있을 때마다 운전을 합니다. A4용지에 초보운전이라는 글자를 크게 적어 테이프로 차 뒤에 붙입니다. 스티커로 초보운전이라 붙인 것보다 훨씬 강해 보입니다.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면허를 받자마자 집에 있는 차를 끌고 나온 철없는 애처럼 보이는 것이죠. 물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저를 보면 애가 아니라 어른임을 알겠지만.

 차 뒤에 붙여놓은 초보운전 종이만 있으면 다른 차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당연히 추월차선이 아닌 다른 차선에서 달립니다) 제 뒤에 있던 차들이 다른 차선으로 가버리거나 저를 우회해서 앞지릅니다. 고속도로에서 느리게 달리는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피해 갑니다.


 초보운전이라 붙이는 건 대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가 운전에 능숙하지 않음을 밝히는 일입니다. 제 안전만이 아니라 그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요. 이런 제가, 초보운전 주제에 남이 운전하는 차만 타면 신경을 과하게 씁니다. 버스 앞자리에 앉는 걸 좋아하는 저는 버스에 탈 때마다 기사님과 함께 차선 변경을 합니다. 함께 한다는 게 어떤 의미냐. 우측 깜빡이를 켜고 기사님이 좌우를 살필 때 제 고개는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귀신처럼 우측으로 돌아갑니다. 혹시나 빠르게 달려오는 차가 있지는 않은지 노심초사합니다. 버스에 올라 내릴 때까지 함께 운전을 합니다. 예전에는 버스 앞자리에서 졸기 바빴는데 이제는 잠은커녕 목이 아픕니다.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어깨가 얼마나 뻐근한지 그만 퇴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죠.


 다시 택시 안. 저는 아직도 진자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속은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듯 울렁거리고, 입에서는 당장 욕지거리나 음식물이 쏟아질 듯하고, 발은 까치발을 든 채 사우나에 온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요.


 “저기, 기사님. 브레이크 좀 살살 밟아주세요.”

 “뭐요?”

 “브레이크 좀 살살 밟으시라고요. 멀미가 심해서요.”

 “뭐, 그럽시다.”


 놀랍게도 택시 기사님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멀미가 가셨습니다. 브레이크는 밟는 듯 마는 듯 부드러워졌죠. 얼마나 부드러운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잠들 뻔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해주시지. 제가 저 멀리 우주에라도 나갈 것처럼 보여 마하의 속도를 견딜 수 있는지 시험이 필요했던 걸까요.


 진작 말했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브레이크를 살살 밟아 달라고. 멀미가 나니까 조금만 천천히 운전해 달라고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뭘 그리 망설였을까요.

 요즘은 참지 않고 말하려 노력 중입니다.


 "저기, 브레이크 좀."

 잡아요 혹은 풀어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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