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랑 Aug 22. 2019

#34. 삼계탕과 인삼주

 검은색 뚝배기에 작은 닭이 담겨 나왔다. 배 안에 들어있어야 할 찹쌀이 국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각종 반찬들과 함께 나온 인삼주가 보였다.


 회사에서 단체로 점심을 먹기 위해 모인 날. 우리는 긴 나무 테이블에 앉아 각자 앞에 놓인 삼계탕을 먹었다. 누구는 국물부터, 누구는 김치부터, 누구는 닭부터 먹기 시작했다. 가게는 말복이 지나서인지 손님이 별로 없어 조용했다. 회사 사람들도 말없기 먹기만 했다. 누군가 먼저 소리를 내면 죽거나 벌칙을 받게 될 테니 조심하라고 경고한 걸까. 다들 절에서 발우공양하듯 각자의 그릇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후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테이블마다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떠들기 시작했다. 뚝배기에 쇠 부딪치는 소리만 듣다가 사람 말소리를 들으니 내가 씹고 있는 게 닭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닭은 작은데 뼈는 많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삼계탕을 먹는 내내 뼈와 살을 분리하느라 분주했던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수십 번째 골라낸 뼈를 앞접시에 버리던 중 아까 봤던 인삼주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테이블에 있는, 아무도 먹지 않는 인삼주를 혼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나는 그날 오후에 차를 가지고 외근을 나가려고 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홀짝홀짝. 넉 잔쯤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삼계탕에 뼈가 많으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순살 삼계탕은 웃기지 않나. 혼자 큭큭 거렸다. 물론 취한 건 아니었다.


 건더기를 다 건져 먹은 내 몫의 뚝배기에는 찹쌀만 떠다녔다. 옆에 놓인 접시에는 골라낸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문득 ‘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삶을 헤집어 겉을 낱낱이 뜯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많은 뼈를 남길 수 있을까. 크고 작은 것들이 남게 될까. 그냥 씹어 넘겨도 좋을 작은 뼈만 있을까. 아니면 큰 뼈가 한두 개쯤 나올까. 나는 무얼 남길 수 있을까. 꼭 무엇을 남겨야 할까. 내가 죽어 남은 사람들에게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을 때 그들이 내 얘기를 할까. 기일에 몇 번 언급되는 정도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질까. 작은 닭이 이렇게 많은 뼈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까지 살아있었을 고기에는 뭐가 남아있을까. 작은데 뼈가 많은 건 이상한 건가. 작은 것은 큰 것보다 늘 적게 가져야 하는 걸까.


 인삼주 때문이다. 나는 젓가락으로 남은 삼계탕을 뒤적거리며 생각 꼬리물기를 하고 있었다. 인삼주는 다섯 잔으로 마무리 지었다. 더 마시면 팀장님을 누나라 부를지도 모르니까.


 사무실에 있는 차 키를 보고 나서야 내가 오늘 무얼 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당연히 차는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덥고 습한 날씨 속을 걸으며 외근 내내 죄 없는 삼계탕과 인삼주를 원망했다. 본래 열이 많은 내가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섭취한 덕에 평소보다 심하게 더위를 느꼈다.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이열치열인가! 열을 열로써 다스린다더니 다스림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 않던가. 폭군을 만난 셈이다. 곧 녹아내릴 내가 가엽지 않은가. 이런 잡생각들을 하며, 혼자 실실 웃으며 거리를 걸었다. 다시 말하지만 취한 건 아니었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이제 슬슬 가야겠다.' 하면서 늘어놨던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기듯 여름이 간다. 더위에 약한 나는 아쉽지만, 굳이 잡기는 싫은 마음이다.

 이번 여름은 삼계탕과 인삼주로 기억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33. 한강, 밤의 카페 테라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