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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Aug 14. 2019

#33. 한강, 밤의 카페 테라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좋은 점이 있다면 걸어서 십분 거리에 한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이 좋은 곳에 사는구나 한다. 우리는 한강이 꽤 길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흔히 알고 있는, 방송에 나오는 한강은 여의도 공원에 있는 한강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한강은 그런 넓은 공원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쭉 이어진, 기다란 한강의 어느 한 지점에 불과하다. ‘불과하다’라는 표현이 애석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람들의 기대를 누그러뜨리기에 이보다 나은 표현을 찾지 못했다.


 주말 저녁. 한강을 뛰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쉽지 않았다. 뜨거운 바람에는 소금기가 있었고 습도가 높아 빠르게 뛰려고 해도 몸이 늘어져 거의 경보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중이었다.

 내가 뛰고 있는 곳 오른편에 위치한 자전거도로에는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 하나 걸리면 밟아버리겠다는 듯 자전거를 탄 채 열을 지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보행로 앞뒤로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오거나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나는 여전히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를 한껏 빨아들인 몸을 재촉하며 뛰고 있었다. 운동할 때는 보통 신나는 노래를 듣는 편인데 하필이면 퀸의 ‘Love Of My Life’가 흘러나왔다. 핸드폰에 있는 음악 플레이어 기능으로 출근용, 퇴근용, 운동용, 독서용 등등 다양한 리스트를 그때마다 바꿔 듣는데 퀸의 노래가 끼어들어 간 것 같았다. 프레디 머큐리의 애절한 목소리 덕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축축해졌다.


 뛰다 힘들어서 걷고 싶을 때 그 순간만 참으면 뛰는 게 오히려 편안해진다. 몸이 단거리만 생각하고 있다가 ‘아! 얘가 오래 뛸 생각인가 보다.’ 하고는 장거리 모드로 바꿔주는 기분이랄까. 그 순간을 참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날 나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단거리에서 장거리가 아닌 걷기 모드로 바꾸었다. 몸은 나의 결정에 만족한 듯 빠르게 편안해졌다. 뛰다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까까지 있던 사람들은 뒤에서 걸어오고 있을 것이다. 오른편 자전거도로는 조용했고, 왼편에 보이는 한강도 조용했다. 드문드문 낚싯대를 거치해 놓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불법이다.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집에서부터 한강이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까지 뛴다. 그곳이 반환점이다. 뛰기를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다. 빠른 템포의 음악만 듣다가 느린 템포의 노래로 바꿔 듣는다. 나만 아는 장소로 향한다.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느낌의 빛이 도는 곳. 그곳에 잠시 앉아 있다가 집까지 다시 뛴다. 어떤 때에는 한 시간씩 앉아있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집까지 뛰어가는 속도를 더 높인다.

 그날은 반환점에서 집까지 걷기로 했다. 뛰기로 마음먹는 것보다 걷기로 마음먹는 게 훨씬 쉽다. 걷지 않으면 어쩌겠나. 집까지 기어갈 순 없지 않은가. 이곳에는 택시가 들어오지 못한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내게 이별을 말했던 사람, 내가 상처를 줬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점점 걸음이 빨라진다. 결국 뛴다. 달리면 쫓아오지 못한다. 한강에 오면 늘 뛰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나는 빠르게 씻고 기절하듯 잠에 든다.



 요즘에도 주말만 되면 한강에 간다. 어김없이 달린다. 간혹 걸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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