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에 저장된 글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창고'라는 이름의 폴더에서 2017년 5월에 써놓은 글을 발견했다. 글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다. 그때의 감정을 수정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싣는다.
아빠.
아버지라 부를 시간도 없이 나한테는 영원히 아빠로 남겠네요. 내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일흔이 되어도, 여든이 되어도 아빠는 영원히 아빠겠지요. 누나가 쓴 글에 아버지라 부를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 적혀 있어요. 그런데 아빠. 나는 아직도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꿔요. 내 방 문틈 사이로 아빠랑 똑같은 덩치의 남자가 안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자꾸 봐요.
어렸을 때는 아빠한테 묻고 싶은 게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묻고 싶은 게 많아지네요. 내가 아빠를 증오했을 때, 누나는 아빠를 너무도 사랑했죠. 내가 아빠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내뱉을 때 누나는 아빠를 변호했어요. 누나는 늘 아빠에게 사랑으로 다가갔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 했어요. 난 그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어린 나에게 아빠는 한 마리 야수처럼 보였거든요. 난 아팠어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피하기만 했던 아빠. 이제는 묻고 싶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어요. 엄마는 꿈에서라도 아빠를 봤으면 좋겠다며 한동안 아빠 영정사진을 안고 잤어요.
아빠. 아빠가 죽은 뒤 몇 달 동안은 아빠와 뒷모습이 닮거나 비슷한 덩치를 가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내려앉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 뒤를 따라가곤 했어요. 죽는다는 게 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당시 내 주위에 죽은 사람은 먼 친척이 전부였으니까요. 내 인생에 첫 죽음은 아빠였어요. 이제는 죽음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차라리 잘 된 거라 말했죠. 더 이상 우리 가족이 힘들 필요도 없고, 아빠도 고통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빠. 아빠가 죽기 전에는 아무리 슬픈 영화나 책을 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이제는 단어 하나에 눈물을 흘려요.
아빠. 난 화해하고 싶어요. 아빠를 지독하게 미워했던 어린 나와 화해하고 싶어요. 그 '어린 나'가 지금의 나를 못마땅하게 여길 때가 많거든요. 아빠가 그리워 눈물 흘릴 때 어느새 어린 내가 튀어나와 안 좋을 말들을 내뱉거든요.
마지막 가는 길. 난 아빠 손을 잡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 구급차 안에서 아빠 손을 잡고 싶지 않았어요.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당신을 이해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사랑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누나는 나보다 아빠를 9년 빨리 만났죠. 아빠가 누나와 보냈던 9년의 시간을 나도 가질 수 있었다면 당신을 조금 빨리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 어린 누나는 아빠와 떨어져 지냈으니 아빠를 생각할 9년의 시간이라고 해야 맞을까요.
아빠.
이런 날 미워하는 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