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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Aug 01. 2019

#31. 네 옆에는 내가 있어

 자꾸만 들러붙는 반팔티를 오른손으로 잡아당기며 왼손에 든 긴 우산을 바닥에 드르륵드르륵 끌며 걸었다. 평소 같으면 시끄러우니 끌지 말라고 했을 텐데 누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흥미를 잃은 나는 더 이상 우산을 끌지 않고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날이 습했기 때문일까. 주말이었음에도 사람들은 표정을 찡그린 채 걸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날이 태어나서 처음 영화관에 간 날이었다. 여름이었고,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에 누나와 나는 우산을 챙겼다. 집을 나설 때 술에 취한 아버지가 너희들끼리 어디 가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움찔하며 누나를 쳐다봤다. 누나는 태연하게 영화관이라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지하철에 타고나서야 누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즐겁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다. 9살 차이가 났지만 나에게 누나는 누구보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또래 친구들이나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말이다. 당시 누나는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아직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이었지만, 내가 아는 시인이라고는 오직 누나뿐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시인들은 대부분 죽거나 동떨어진 얘기만 했으니까.


 우리가 볼 영화는 <토이 스토리>였다. 1편인지 2편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개봉하자마자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영화가 나온 뒤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싼 가격에 보러 간 것은 기억이 난다. 영화관은 서울극장이었다. 그늘진 극장 주변이 시원했음에도 오래 머물고 싶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우울한 곳이었다.

 영화관 안은 시원했다. 의자는 푹신했고 무엇인지 모를 향기가 났다. 큰 화면에서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당시 집에 있던 텔레비전 수십 대를 붙인 크기였다. 나는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휘휘 저으며 쏟아지는 영상에 푹 빠져 있었다. 저곳에는 멋지고, 새롭고, 비싸고, 아름답고, 웃는 것들만 가득하구나 생각했다.


 서로 나이가 꽤 든 지금에도 누나는 장난감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어릴 때 누가 네 장난감 만지는 거 되게 싫어했어. 과자 같은 거 먹고 만지려고 하면 아주 생난리를 쳤지. 꼭 손을 닦아야 만지게 해 주고 그랬어. 결벽증 환자처럼 굴었다니까.”


 아무도 모른다. 미끄러운 손으로 ‘내 장난감’을 만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그들이’ 싫어할 거라 생각했다는 걸 말이다. <토이 스토리>를 보고 온 날. 나는 모두가 잠든 밤 작은 화장실에 앉아 가장 아끼던 장난감들의 발에 내 이름을 써주었다. 당시에는 내 방이 따로 없었기에 화장실에서 은밀하게 그랬다. 그때부터 누군가 내 장난감(친구들을)을 함부로 만지는 걸 싫어했다.


 영화가 끝난 뒤 누나와 서울극장 옆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자리에 없을 때 몰래 움직일 장난감들을 상상하며 누나와 수다를 떨었다.

 저녁이 되자 날씨는 선선해졌고 비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술에 취한 사람 덕에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뒤 벌어진 일은 생략하도록 하자. 우리 가족에겐 일상처럼 일어나는, 막을 수 없는 작은 재해였으니까. 언제나 해결은 누나 몫이었으니까.


 <토이 스토리> OST 중 가장 유명한 노래는 ‘You've Got A Friend In Me’라는 노래일 것이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뜻은 모두 같다. 너와 내가 친구이며, 우리가 함께 있고, 네 옆에는 내가 있다는 얘기. 누나는 오랜 시간 내게 보여주었다. 네 옆에는 내가 있다고.

 당시 누나는 20대 초반이었다. 그때 누나 나이를 훌쩍 넘긴 나는 지금에야 깨닫는다. 사실 누나도 참 어렸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하다 보면 목이 무거워진다.


 내 옆에 누나가 있기도 했지만, 누나 옆에도 내가 있었다. 둘이었기에 버틴 게 아닐까. 숨 쉬는 날보다 숨을 참아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때의 우리 둘을 생각하면 주저앉고 싶어진다.



 "You've Got A Friend In Me."

 많은 게 바뀐 지금도 누나와 나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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