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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Jul 25. 2019

#30. 듣고 싶은 얘기

 듣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그 얘기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와 같습니다.


 “사랑에는 무엇인지 모를 세상의 끝 같은 것이 있다.”

 _폴 발레리


 처음 이 말을 듣고 멋지다 생각했어요. 사랑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을 텐데 왜 하필 세상의 끝이라 말한 걸까. 세상의 끝 같은 게 무얼까. 세상도 아닌 세상의 끝 같은 것.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하나의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것과 같아요. 내 위주로 존재하던 세상에 갑자기 등장한 그 혹은 그녀의 세상. SF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처럼 밤하늘에 두 개의 달이 뜨는 순간.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상대의 세상을 기웃거리죠. 비슷해지려 해요. 상대가 뱉어놓은 사소한 말들을 아무도 모르게 집어와 집에서 찬찬히 살펴보는 일. 말 하나하나에 나를 넣어 생각합니다. 집에서 시작한 그 일이 거리, 학교, 회사 등 모든 곳에서 벌어집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내 세상에 끼워 넣으려 하지요. 상대에 의해 내 세상의 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얘기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동등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겠죠. 혼자 하는 사랑은 물론 둘이 하는 사랑도.


 모든 게 상대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연약한 존재가 됩니다. 낭떠러지에 서 있거나 절벽에 매달린 사람처럼 늘 위태위태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세상의 중심에서 신나게 춤을 추거나, 어느 때에는 세상의 끝자락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기도 해요.

 슬프다고 해야 할지, 우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상대는 나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 생각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나라는 존재를 몇 광년 떨어진 이름 모를 별처럼 생각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죠. 이 모든 건 스스로가 만든 겁니다.


 큰 아픔이 있을 때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라 얘기합니다. ‘나’라는 하나의 세상이 무너지고, 깨지고, 바스러지는 순간에도 상대의 세상은 작은 접촉사고조차 일어나지 않아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세상은 무정부 상태에 들어가고, 시민들은 혼란에 빠지고 여기저기 비명과 울음소리가 가득한데 말이죠.


 사랑이 쉬운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이 흔들리는 일인데.


 "사랑에는 무엇인지 모를 세상의 끝 같은 것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세상의 끝 같은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모를'이지 않을까요. 무엇인지 모를.



 듣고 싶은 얘기는 듣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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