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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Jul 11. 2019

#29. 타임머신이라는 진부한 얘기

 나는 아버지의 연주를 취하지 않은 채 듣는 관객이고 싶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밤무대 연주자였다. 딴따라.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동안 흥을 돋우기 위해 연주하는 사람. 그가 실제로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술집 사장이나 손님과 싸우고 집에 돌아와 억울해하는 모습은 몇 번 봤었지만.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갔다 올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말이다. 로또 당첨 번호를 알아 오겠다고 하는 친구와 인간이 왜 이렇게 잔잔하게 노느냐며 비트코인을 미리 사겠다는 친구, 주식을 사놓겠다는 친구 등등 모두가 돈과 관련된 얘기를 쏟아냈다. 그러다 많은 돈이 생기면 무얼 하고 싶냐는 주제로 번졌다.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얼 하겠다는 말을 딱히 꺼내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된 건물을 사고, 부모님 효도 여행에 비싼 자동차 등등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를 먼 미래로 가 있었다.


 타임머신이라는 진부한 얘기로 술자리는 시끄러웠다. 내가 과거에 다녀올 수 있다면. 그 모든 곳에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 모두 그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방바닥에 누워 허공에 대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음음음 허밍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움직여 보이지 않는 키보드를 눌렀다. 간경화 때문에 일을 관두고 알코올 중독자가 된 때였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있는 건 부엌에 냉장고가 서 있는 것처럼 신경 쓰이지 않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취한 아버지를 지나치다 그 모습을 봤다. 허공에 움직이는 손가락, 음음 울리는 허밍, 자신의 연주에 빠져 움직이는 눈썹, 들썩이는 어깨. 저 연주를 한 번 들어봤으면 했다.


 내가 태어나서 아버지가 죽기까지 그의 연주를 딱 한 번 들어봤다. 기타를 제외하고. 한때 기타를 쳐보겠다며 집에 들고 온 누나 덕에 아버지의 기타 연주를 들을 기회는 꽤 있었다.

 아버지는 먹을 것들과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안성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자주 내려갔었다. 나도 몇 번 함께 했다. 그 집에는 작은 오르간이 있었다.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흰색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오르간 의자에 앉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루한 야구 경기를 보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오르간 뚜껑을 열고 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 발로 오르간 페달을 밟고 연주를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음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TV 소리를 줄이곤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박자를 따랐다. 할머니 노래에 맞추어 아버지도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천국이 있다면 이렇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그 순간을 직접 그려보라고 하면 지금도 그릴 수 있다. 똑같이 재현해 보라면 그럴 수 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세 사람을 추모공원에서 만날 때. 나란히 놓여있는 납골함을 보며 하늘에서 예전처럼 모여 오르간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할 정도로 그 장면이 깊게 남아있다.


 그날 아버지가 연주했던 곡이 어떤 곡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술에 취해 누워서 연주하던 곡인지, 밤무대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을 위해 연주했던 곡인지, 어머니가 반했다던 곡인지 알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안성에서 오르간을 치며 노래하던 순간이 좋지 않을까. 죽은 그들을 모두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그보다 다른 때로 가보고 싶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그렇게 멋있었다는 시절로. 밤무대에서 멋지게 연주하는 아버지를 보러. 나는 가게 한 구석에 앉아 아버지의 연주를 취하지 않은 채 듣는 관객이고 싶다. 아니 청중이고 싶다. 연주 중에 술을 권하거나 연주가 모두 끝났음에도 돈을 던지며 무리한 앵콜을 외치거나 먹던 안주를 집어던지는 손님이 아니라. 그의 연주를 가만히 듣는 청중이고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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