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참담한 마음으로 TV 곁을 서성거렸다. 아버지는 슬픈 눈을 하고 어깨가 축 처진 어린 아들의 모습을 모른 척하며 야구를 시청했다. 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시즌은 왜 이리 긴 것인가 하며 그 시간에 나오는 만화영화를 포기해야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도덕 교과서에서나 보던 말을 가정교육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프로야구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TV를 보는 것 외에 다른 놀이를 찾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야구할 시간이 되면 오징어를 구워 고추장과 함께 작은 접시에 담아 TV 앞으로 가져왔다. 나는 그 옆에서 오징어 다리를 뜯으며 작고 하얀 공을 던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낱 공놀이(어린 꼬마의 생각이었으니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야구장에 다닐 정도로 좋아한다)에 저렇게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응원을 가고, 집에서 시청을 한다는 게 웃겼다. 학교 체육시간에 하는 공놀이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야구만 틀면 방에 들어가던 아들이 며칠을 옆에 앉아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느닷없이 말을 걸었다. 평소에 야구도 안 보는 게 웬일이냐고 하더니 야구 규칙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만화를 보라고 하는 줄 알았던 나는 ‘야구 규칙’이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의 야구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깨달았다.
“저기 쭈그리고 앉아서 공 받는 사람이 포수야. 그 밑에 보이는 흰색 있지? 그걸 홈이라고 불러. 홈은 영어인데 우리말로 하면 집이야. 방망이를 들고 공을 치는 사람은 타자라고 하는데 저 사람이 투수가 던지는 공을 쳐서 집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1점이야.”
집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1점. 자주 쓰이는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어린 나에게는 신기한 규칙으로 느껴졌다. 피구처럼 누군가를 맞히거나 술래잡기처럼 끝까지 도망 다니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집에서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점수를 받는다니.
어머니는 매일 가게로, 누나와 나는 매일 학교로. 집 밖으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하루에 1점씩 받는 셈이었다. 우리 집은 하루에 3점씩 점수를 받았다. 예전에는 4점이었으나 아버지가 여러 이유로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점수를 얻지 못했다.
현재 우리 집 점수는 2점. 어머니와 내가 매일 집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고 있다. 언젠가 우리 집 점수는 1점이 될 것이고. 0점. 아무도 돌아오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