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들어갔던 가게에서 나와 다시 가던 길을 가려할 때. 내가 어느 방향에서 왔던가를 헷갈려하는 일은 숨 쉬듯 흔하다. 일방통행처럼 일자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문제는 골목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 곳이다. 자타공인 길치인 나는 늘 다니던 길도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사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자책하는 일만 없다면 말이다.
운신할 몸이 나 하나일 경우에는 헤매더라도 약속 시간만 늦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그래서인지 항상 일찍 출발하는 버릇이 생겼다. 문제는 동행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길을 안내해야 하는 때이다. 몇 번 가봤다는 내 말을 믿고 순진한 얼굴로 따라나선 그들은 결국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툴툴대거나, 화를 내거나, 자신이 곧 부처라는 마음가짐으로 웃으며(참고 있음이 티가 나지만) 괜찮다고 여러 번 말한다. 두세 번 잘못된 길로 안내한 나는 그들이 보내는 괜찮다는 격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축구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은 선수처럼 겉으로는 그들의 격려를 쿨하게 받아들이는 척하며 속으로는 온갖 욕을 자신에게 퍼붓게 된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이럴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지도 앱의 등장은 혁신과 같았다. 초행길이라도 지도 앱만 있다면 못 갈 일이 없는 것이다. 길치들도 말이다! 그게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지도 앱만 잘 사용하면 웬만해서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길치 본능을 쉽게 억제할 순 없다. 뻔히 지도를 보며 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체 어디서 우 혹은 좌로 꺾으라는 건지 알 수가 없을 때도 있고, 가라는 길이 공사 중이라 돌아서 가면 이상한 골목골목을 쑤시고 다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가 막혔으니까 이렇게 이렇게 가면 되겠네.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왜냐고? 나는 길치지 않은가.
지도 앱은 우리 길치들을 배신하지 않는다. 경로가 어찌 됐든 목적지로 안내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문제는 외국이다. 국내 지도 앱은 외국보다 자세하며 헷갈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만이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다. 길이 이상하게 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지도와 실제 모습이 다르기도 하며 시시각각 가라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묻자니 그들이 한참남은 내 목적지를 일일이 설명해주긴 어려울 것이다. 다 알아들을 자신도 없지만.
서른 살이 되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당시에는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이라 설렘만 가득했지 걱정은 없었다.
얼마 전,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 길치 본능을 끝내주게 발휘했다. 바야흐로 길치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