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랑 Sep 27. 2019

#42. _에게

 집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는데 사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가방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면 안방에서 뛰어오던 구름이가 이제 없다는 걸 난 알아. 구름이 알지? 우리 집에서 10년 넘게 키웠던 반려견. 한동안은 주춤 거리기도 했어. 타닥타닥 발톱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해서. 움찔하는 거지. 평소에 안경을 쓰는 사람이 잠시 벗어둔 걸 잊고, 안경을 쓰고 있지도 않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안경을 올리기 위해 손으로 허공을 툭 치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야 아, 안경은 없지. 하듯이.


 가끔은 침대에 누워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해. 옆집은 이사 갔어. 내 노래 때문은 아니야. 소곤소곤 부르거든. 음이 아주 높고 성량이 풍부해야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나는 작게 부를 줄 알아. 옆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왔는데 아직 얼굴도 못 봤어. 내가 모르는 신비한 일을 꾸미는 사람들이 아닐까 상상하곤 해.


 사랑하는 것들만 떠나기 마련이야. 관심 없는 건 그게 죽었다 해도 우리는 몰라.


 마음은 시소 같아서 오래 앉아있을수록 빨리들 떠나더라. 움직이지 않는 시소는 재미없으니까. 혼자서 시소를 타본 적 있어? 결코 올라갈 일이 없는 거야. 무릎을 한껏 굽히고 엉덩이는 시소 아래 반쯤 튀어나온 타이어에 걸친 채 멍하니 앉아있는 거지. 거지? 맞아 거지 같은 기분이야. 웃긴 건 그래도 그게 좋아서 앉아 있었어.


 이제 나는 시소에서 일어나는 법을 알아. 저 사람이 홀로 오랫동안 앉아 있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걷는 법을 알아. 뭐든 덜 하면 되는 거야. 덜 하려고 하면 되는 거야. 덜 말하고, 덜 보고, 덜 듣고. 이게 마음대로 되면 이길 수 있어. 불행해지겠지만.



 기다리는 일이 즐거웠으면 좋겠어. 그게 다야.

매거진의 이전글 #41. 제 바지 좀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