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very lucky guy."
infotmation이라 적혀 있는 작은 공간. 한 손으로 턱을 괸 Jenny가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카오에 있는 한 성당 유적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박물관이 있다. 말이 박물관이지 다 뚫려 있어서 야외나 마찬가지다. 운동장에 금을 그어놓고 여기까지가 내 땅이야 라고 외치듯 긴 줄로 외부와 구분해 놓은 모습이었다. 농구장 코트 두 개를 합친 크기였다.
성당이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지키는 건지, 지워질까 걱정하는 건지, 자랑하는 건지, 뭘 보여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공간. 그 작은 공간에 여러 명의 직원들이 있었다. 정문에는 파란 제복을 입고 더운 날씨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는데, 사진을 찍어도 좋냐는 내 물음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마음껏 찍으라고 했다. 여기서 마음껏은 '마음~껏 찍어. 근데 찍을 게 있니?'라는 말투였다.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쪽에 예전부터 지금까지의 성당 사진을 몇 장 걸어놓고 그걸 지키는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해 저 사진이 거리에 있으면 누군가 버리고 갔군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박물관 구석에 바짝 붙어 위치한 작은 건물. 이건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용주차장 요원분들이 잠시 머무는 곳처럼 생긴 곳에 Jenny가 앉아 있었다.
Jenny가 Jenny인 건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이제는 아니까 Jenny라고 하자. '이름 모를 그녀가 앉아 있었다.'라고 하면 껄끄러운 삼류소설 같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그 작은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직원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함께 들어온, 들어오기 전에 내가 그들의 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찍어준 일본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 미국 사람들, 모르는 언어의 사람들까지. 흔적이라기보다는 장난 같은 유적들에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찰칵찰칵 울리는 내 카메라 소리만이 성당의 흔적들에게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주었다. 유적지에 들어오기 전 내가 각국의 가족사진을 찍어준 얘기는 길게 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족을 해맑게 웃으며 흔쾌히 찍어주자 저 사람 괜찮네 라는 신뢰를 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신뢰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Jenny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작은 건물에는 infotmation라는 간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았다.
함께 들어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금방 자리를 떠났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나는 infotmation에 다가가 혹시 지도가 있나 두리번거렸다. 관광지라 그런지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도와줄 게 있냐고 혹은 뭐 찾는 게 있냐고 물었다. 물론 Jenny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혹시 이곳에 지도가 있냐고 했다. Jenny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무슨 지도를 찾느냐고 물었다(이 대화는 모두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두고 싶다. 아주 간단한 단어들로). 나는 마카오 반도 지도나 이 근처 관광지를 설명한 지도가 있냐 묻고는 우리나라 말로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Jenny는 그때서야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물었다.
"What's your name?"
Jenny도 나도 영어가 유창하진 않았다. 의외로 마카오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나를 포함하여). Jenny와 나는 떠듬떠듬 영어단어를 끄집어내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게임 같았다. 서로가 던진 단어만으로 유추해내는 게임.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묻기. 나와 Jenny는 꽤 오래 얘기를 나눴다. 이 게임이 재밌었고, 불편하지 않았다. 서로의 삶을 크게 오해하지 않는 선에서 질문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 말고 무얼 하냐는 Jenny의 질문에 나는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마카오에 여행 온 이야기도 하나쯤 쓰게 될 것이라 했다. Jenny는 작가냐며 영광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얘기는 진짜 작가들을 만나면 해주라고 말했다. Jenny는 앞으로 진짜 작가를 볼 일은 없을 것이며, 이곳에 영원히 머무는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 했다. 평생 같은 자리에서 하늘을 받치고 살아야 하는 아틀라스 신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얼핏 알겠다는 표정으로.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Jenny는 자기도 인터넷에 올리는 내 글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네가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했다. Jenny는 '구글. 오케이'하며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종이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 인터넷 주소를 적었다. 저 멀리 중년의 직원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내가 너희들을 쭉 지켜본 결과 잡담이야. 그러므로 끝을 내러 온다.'라는 느낌이었다. Jenny가 그걸 눈치채고 나를 보내기 위해 종이를 내밀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나는 Jenny에게 종이를 건네고 이렇게 말했다.
"good luck. Jenny."
진심이었다.
To. Jenny
이 글을 구글 번역기로 돌리면 어떤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내가 영어로 쓰자니 답답해서 못하겠고. 오늘의 너도 그 자리에 있니? 같은 건물, 같은 공간에서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그렇구나 망하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앉아있니? 정문에 있는 아저씨는 어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도 그 아저씨도.
이 얘기를 널 만난 당일 마카오 호텔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어. 왠지 창피하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그때그때 바로 써야 해. 쉽게 잊힐 일은 아니었지만.
아마 며칠 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을 거야. 그곳에서 일하고 있겠지. 다시 마카오에 놀러 가게 되면 그때는 한국에 있는 무엇이라도 기념품으로 챙겨갈게. 그때까지 네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거라고 했지.
혹시라도 내가 마카오에 다시 와서 그 심심한 유적지에 또 간다면. 그곳에 네가 없길 바라. 좋은 의미로.
행운을 빌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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