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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Feb 21. 2019

#11. 버스 맨 앞자리에 앉는 일

 어떤 버스를 타든 간에 고수하는 자리가 있다. 출퇴근을 버스로 하기에 적어도 하루에 두 번, 회사 업무로 외근을 나갈 때도 버스를 이용하기에 많으면 하루 네 번 이상 버스를 타기도 한다. 그때마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는다. 버스 기사 바로 뒷자리보다는 앞문이 있는 쪽을 선호하지만 말이다.


 출퇴근 길에 버스를 타면 잠에 취해 있어 주변 풍경을 볼 겨를이 없었는데 그날은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퇴근길 버스에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일은 회사에 두고 오자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내 방 침대 위까지 가져오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악몽을 꾸기도 한다.


 그날. 버스 앞문 쪽 자리를 누군가 선점했기에 버스 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회사에서 생긴 일로 심기가 불편했던 나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애써 다른 생각을 떠올렸지만, 오히려 그 일을 돋보이게 하는 해괴망측한 짓을 하고 있었다. 오른손을 잊고자 왼손만 생각했더니 비어있는 오른손이 더 잘 떠오르는 그런 일이랄까.

 내가 탄 버스의 버스 기사는 정장 차림에 흰색 장갑을 끼고 리듬을 타듯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들며 운전을 했다. 나는 왼편에 있는 창문을 통해 어둑한 하늘과 주황색 불이 켜진 도로, 그 위를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내가 탄 버스와 같은 번호를 가진 버스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버스는 같은 번호를 가진 몇 대의 차량이 정해진 노선을 계속 돌기 때문에 간혹 반대 차선에서 같은 번호를 가진 버스를 마주치곤 한다.

 거리 위 차들 사이로 내 고민이 훌쩍훌쩍 뛰어다니며 나를 따라오는 게 보이는 때, 바로 앞에서 운전하고 있던 버스 기사가 흰색 장갑을 낀 왼손을 들더니 반대편에서 오는 버스 기사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같은 번호의 버스를 모는 기사들끼리 서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눈다는 건 알고 있었음에도 몸을 좌우로 흔들며 운전하던 버스 기사가 반대편에서 오는 같은 번호의 버스 기사에게 ‘안녕’ 하는 모습이 내게 왜 그렇게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 버스 기사는 번호가 다른 몇 대의 버스 기사에게도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매일 같은 노선을 도는 일. 맡은 노선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일. 같은 노선을 내 앞이나 뒤에서 똑같이 도는 사람과 ‘안녕’ 손들어 인사 나누는 일. 태양 주위를 지겹게 도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처럼 나와 다르지만, 그들만의 노선을 반복해서 도는 사람과 ‘안녕’ 인사를 나누는 일.


 친구들끼리 모여 회사 얘기를 나누거나 상사 욕을 하다 보면 위로를 받게 된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나만 똑같은 노선을 돌아야 하는 게 아니구나. 너도 나처럼 네가 돌아야 하는 노선을 돌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이만큼 힘든 데 너도 이만큼 힘들구나.’라는 식은 아니다. 모두가 힘들다는 사실을 통해 위로받기보다는 서로가 달리고 있음에서 위로가 오는 게 아닐까. 멈춰있는 버스의 버스 기사는 ‘안녕’ 인사를 나눌 수 없으니까. 달려야만, 도로를 달려야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버스의 버스 기사와 ‘안녕’ 할 수 있으니까.


 내게 괴로움을 주었던 직장 상사도 자신만의 노선을 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도, 나도 달려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노선을 바꾸더라도 말이다.


 요즘에도 위로가 필요할 때면 버스 운전사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같은 노선을 도는 버스 운전사의 등을 보는 것으로 괜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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