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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Feb 28. 2019

#12. 부끄러움은 어디서 오는가

 손바닥은 붉고 손등은 희다. 목장갑을 낀 손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목장갑을 낀 손으로 물건을 가득 실은 카트를 밖으로 끌어낸다. 조용한 대학원 건물 복도에 드르륵드르륵 듣기 싫은 소리가 울리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 척 배달하는 곳까지 카트를 밀고 간다. 그런 내 뒤를 드르륵 같은 소리를 내며 직장상사가 따라온다. 우리는 2인 1조로 움직이며 회사 트럭에 물건을 가득 싣고 하루에 두세 곳을 방문해 상품을 내리고, 카트에 올리고, 배달하고, 카드기를 꺼내 결제를 받고, 다시 차에 올라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삼 주 정도 꼬박 이 일에만 매달린다. 허리에 복대는 기본이며 밤마다 이곳저곳에 파스를 붙이고 잠든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매년 어떤 시기가 되면 회사의 물품을 직접 대학원이나 관공서에 납품한다. 덕분에 국회의사당이나 헌법재판소 등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던 곳에 가보기도 했다. 그에 비해 대학원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예전 일들 그러니까 대학생 때의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정도였다.


 납품 시기가 아닌 대부분의 날들은 원래 내 업무대로 평범한 회사원처럼? 사무실에 앉아 기획을 하거나 마케팅을 진행한다. 회사에 앉아 업무를 보는 나는 자신감이 넘치고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허상에 빠져있다. 그 허상이 나를 일하게 만든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당당하다. 그러나 이 시기만 오면 움츠러든다. 목장갑을 끼고 카트를 끌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어떤 시선이 느껴진다. 대학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학생 또는 교수들 중 딱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괜히 목장갑을 정리하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카트를 밀고 나간다.

 관공서는 더 심하다. 대놓고 하대하거나 반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면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보여주고 싶어 진다. 내가 이런 곳에 다니는 사람인데 지금은 시기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이 상품이 내가 직접 관여하고 만든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이런 순간이 반복되면 회의감이 든다.


 종일 물건을 들고 뛰어다니다 보면 아무리 미운 직장 상사라도 어떤 연대감 같은 게 생긴다. 몸을 쓰는 일을 함께하면서 말이다. 한 대학원에 물품을 납품하고 나오는데 행정실에 계신 분이 목이라도 축이라며 팩에 들은 우유 두 개를 건넸다. 상사와 나는 대학원 건물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땀을 식히며 우유에 빨대를 꽂아 쪼르륵 마셨다. 젊은 나도 대학원이나 관공서에 물건을 나르다 보면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나 보내는 시선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데 상사는 오죽할까 생각했다. '이 사람도 참 고생이다.'라는 생각으로 넘어가는 와중에 상사가 물었다.

 “힘들지?”

 “아닙니다.”

 대답을 하고는 상상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전 직장들에서 숱하게 들었던, 정사를 바탕으로 연의 삼국지를 쓴 나관중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만큼 부풀려진 그들의 무용담과 젊어서는 일부러 고생을 해야 한다는 말들이 이어지겠구나 하고 말이다.

 힘들지 않다는 내 대답에 상사가 이어서 말했다.

 “나는 이 일을 매년 하는데도 되게 힘드네. 그래도 어째? 해야지 뭐. 일주일이면 끝나니까 힘냅시다.”

 그는 괜찮은척하지 않았다. 대부분 저 정도의 연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말단 직원 앞에서 부러 힘든 티를 내지 않거나 역으로 엄살을 심하게 떨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냥 힘냅시다라니. 나와 달리 상사는 그저 '일'을 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상사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이전에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대학원이나 관공서에서 내가 느꼈다고 생각한 그 시선은 사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냈던 시선이 아니었을까. 내가 물건을 배달하고 유통일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던 시선이지 않았을까. 내가 그들을 보는 시선이 거울이 되어 현재 물건을 나르는 나를 남들이 이전의 나와 똑같이 생각하며 바라본다고 느꼈던 건 아닐까. 그저 '일'인데 말이다.


 부끄러움은 어디서 오는가. 밖에서 오는가 아니면 안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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