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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Mar 07. 2019

#13. 어른은 아무나 하나

 너도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까. 너도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니까. 너도 이제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군대도 다녀왔으니까. 대학도 졸업했으니까. 취직도 했으니까. 이제 어른이니까.

 어른은 뭘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일일까. 내 나이도 이젠 남들이 애라고 생각할 만한 숫자를 넘겼으나 내 생각에 나는 아직 애다. 철부지에 불과하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하거나 끝냈을 때 부여받는 것들이 있다. 부모나 형제들의 기대라 해도 좋고, 사회가 한 개인에게 바라는 어떤 결과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어느 날 술자리에서 어른이 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물론 모두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아직 술이 오르지 않았을 때 이 따위의 근본적이고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면 다음 술 약속부터는 연락이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들 흥얼흥얼 입안에 고여 있는 말들을 혼잣말로 내뱉을 때 내가 물었고,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혼자서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어른 같아. 이전에는 절대 혼자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을 혼자 해냈을 때.”

 나는 어떤 일을 혼자서 해냈던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은 무엇이 있었나.

 

 내 생각에 어른은. 어른은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 같다. 어른은 징징거리지 않는 사람. 덜 실망하는 사람. 힘들어도 이전만큼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사람. 벼랑 끝에 몰려도 까치발로 서서 어떻게든 버티는 사람. 그러다 한 순간 푹 꺼지는 사람. 그게 어른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마치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사건을 담당한 특파원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가.


 어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흔히 부모를 어른의 표상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일찍이 깨달았다. 부모라 해도 꼭 어른은 아니라는 것을. 게다가 그들이 꼭 어른일 필요도 없다. 자식 입장에서야 부모가 어른이면 좋겠지만, 부모도 어른이라서 부모가 된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부모가 되었겠지. 나도 어떻게 어떻게 살았더니 이 나이에 왔다. 대부분이 그렇다.

 회사에 있다 보면 연차가 꽤 있는 상사들에게서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참 빠르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들은 그 이유를 나이에서 찾는다. 나이가 들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말한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나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지 묻기도 한다. 내가 대답을 망설일 때 한 직장상사가 젊어서 시간 천천히 간다고 하지 말고 그냥 빨리 간다고 말하라고 하자 주위 있던 사람들이 하하하 웃었다. 나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 건 젊은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알기에 그저 웃었을 뿐이다.

 요즘의 나는 하루가 길고, 일주일이 길고, 한 달은 멈춰있는 느낌이다. 내가 그들에 비해 젊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버티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버티는 건 몸으로 체득하는 일이다. 밖에서의 일을 안으로 가져와도 티 내지 않는 일이다. 어떤 일에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아, 어른이 되는 길은 얼마나 어렵고 고단한 일인가. 주위 사람들이 내 징징거림을 들어줄 때까지는 어른이 되는 일을 잠시 모른 척해도 되지 않을까. 다만, 모두가 술에 얼큰하게 취할 때까지는 내 안의 울화를 섣불리 꺼내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


 언젠가 내가 멋진 어른이 된다면(어른은 다 멋지다. 멋져야 어른이 되니까) 내 징징거림을 들어준 사람들의 버티는 이야기를 종일 들어주고 싶다. 따뜻한 차 말고 시원한 맥주 한 잔 건네면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고 싶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기약 없는 먼 이야기다. 어른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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