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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Mar 14. 2019

#14. 누군가 아버지를 잃은 아침, 나는 밥을 차린다

 내일은 꼭 아침을 먹고 회사에 출근하리라 다짐했다. 보통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야겠지만, 휴대폰 알람을 이르게 설정해 놓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무엇을 차려 먹을까 생각하면서.


 아침을 먹겠다는 의지 덕분인지 놀랍게도 단 한 번의 알람에 눈이 떠졌다. 5분 간격으로 설정된 알람을 계속 끄다가 마지노선에 있는 시간의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일어나기 마련인데 말이다.

 눈을 뜨고 아침밥에 대한 나의 강력한 의지에 감탄하면서, 안쓰러워하면서 거실로 향했다. 시장에서 사 온 팩에 들어있는 닭볶음탕을 꺼내 냄비에 옮기고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렸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나는 아침부터 닭볶음탕을 먹겠다고 이러고 있으니 슬쩍 웃음이 나왔다. 나는 죽음보다 삶에, 삶에서도 음식에, 맛에 집중하는 사람인가. 회사에 가기 전에 아침을 차려 먹겠다고 애쓰고 있는 내 모습.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햇반 한 개는 2분이면 충분하다. 이미 조리되어 포장된 닭볶음탕도 10분만 가열하면 먹을 수 있다. 간편하고 쉽다. 서걱서걱 보글보글 같은 소리 대신 띵하고 울리는 전자레인지 완료음이나 가스밸브가 열렸다고 말하는 가스밸브 자동 잠금 기계의 건조한 소리가 들린다.


 역시 아침에는 죽음보다 닭볶음탕이지 혼잣말을 하며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 데워진 햇반을 뜯어 놓고 벌써 쉬어버린 김치를 내놓고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닭볶음탕을 뒤적거렸다. 1인 가구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 닭볶음탕에는 반 마리의 닭이 들어가 있다. 다리가 한 개라는 소리다. 치킨, 찜닭, 백숙 등 닭이 들어간 요리에서 닭다리를 가장 선호하는 나는 조금 슬퍼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십중팔구 회사일 거라 생각했다. 오늘 있을 회의 관련 얘기이거나 시안을 올렸으니 확인 바란다는 얘기겠지.



부고

오늘 오전 OOO의 아버지 OOO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빈소: OO병원 O층 O호실

발인: O월 O일 O시



 친하다고 말하기도, 친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빈소를 확인해보니 서울에서 먼 지역이었다. 부고 문자를 받고 처음 든 생각은 ‘거리가 멀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마음이 어떨까.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할까.'가 아니라 거리가 멀어서 갈 수 있을까였다.

 나는 상주를 대신해 문자를 전해준 친구에게 참석할 수 있으면 가도록 노력하겠다는 상투적인 문자를 보내고 닭볶음탕을 상에 옮겼다. 남의 일에 매번 마음을 쓰면 살아가기 힘들 거라 생각하며 밥을 넘겼다. 거의 다 먹었을 때 물 한 잔 따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고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다 먹은 밥을 치우는데 냄비에 닭다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지 못할 게 게 뻔하다. 가지 않을 게 뻔하다고 해야 정확하겠지. 그럼에도 그런 문자를 보낸 이유는 뭘까. 참석할 수 있으면 가도록 노력하겠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왜 쉽게 간다고 할 수 없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 가지 못하는 걸까. 빈소까지의 거리가 멀어 가지 못하는 걸까.


 누군가 아버지를 잃은 아침에는 무얼 생각하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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