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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Mar 21. 2019

#15. 사랑도 늙나요?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을 좋아해요. 질문으로만 이루어진 책이죠. 제게도 질문만 써놓은 작은 노트가 있어요. 버스 안이나 카페 혹은 집 등에서 뭐든 질문이 떠오르면 적어 놓습니다. 답을 바라고 적는 건 아니에요.


 많은 질문 중 이 질문이 제게 가장 오래 남아 있습니다.

 "사랑도 늙나요?"

 열렬했던 감정이 식는 일을 물어보는 건 아니에요. 그건 이미 경험한 일이니까. 제가 그러기도 했고 상대방이 그러기도 했죠. 섭섭하진 않았어요.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했어요.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었고요.


 말이 길어졌네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요.

 "사랑도 늙나요?"

 어쩌면 늘 궁금했는지도 몰라요. '사랑이 늙는다'는 것이 오랫동안 사랑했음을 전제로 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몸이 늙는 것과 사랑이 늙어가는 일은 다르지 않을까요? 아주 어린 사람의 사랑도 늙을 수 있어요. 아주 늙은 사람의 사랑도 젊을 수 있고요.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됐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왜 이 질문이 저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고요. 몇 번인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어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요. 사람에 따라 반응은 달랐지만, 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짧지만 어떤 순간은 반짝거렸어요. 그 대답이 끝난 뒤, 사랑이 늙는다고 생각하느냐 물으면 머뭇거렸습니다. 질문이 모호해서였을까요. 늙는다는 단어 때문이었을까요. 늙음이 끝을 상기하게 만들어서 일까요.


 "사랑도 늙나요?"

 만약 저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답을 알고 있었다면 묻지 않았을 테니 답이 없는 게 당연한 걸까요. '사랑'을 얘기하는 책을 많이 읽었어요. 사랑의 기술이나 고백법, 좋아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따위의 책은 당연히 아닙니다. 저는 그런 종류의 책을(이렇게 말해 죄송하지만) 굉장히 싫어해요. 마음은 넘칠 것 같지만, 표현하는 방식이나 기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넘치치 않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떻게든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에 집어 드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뭐라 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걸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더라고요.


 "사랑도 늙나요?"

 늙는다는 말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정한다면 조금 더 쉬워질까요. 늙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늙음이 쇠약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겠죠. 그렇다고 딱히 연륜을 의미하지도 않아요. 정확히 무슨 뜻이냐 묻는다면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무책임한 말이죠. 그래요. 어떤 때에는 무책임한 사랑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주위에 있잖아요. 사랑해서 비난받는 사람들이요. 하지 말아야 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요. 그런데 세상에 하지 말아야 할 사랑이 있나요.


 "사랑도 늙나요?"

 사랑을 할 때에도, 사랑하지 않을 때에도 이 질문을 늘 머릿속에서 굴려봅니다. 나로부터 오는 일인지, 상대로부터 오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하다 보면 알게 될까요?

 모든 걸 다 줄 것처럼 사랑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동의하에 연인이 되었다가 서로 혹은 한 명의 그만하자는 말에 남남이 되는 일이 우스울 때도 있어요.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래도 좀 우스워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다 사라진다는 것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랑도 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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