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걱정하나

무서운 추억 하나

by 김영빈

내 고향 남양주시 평내,
해발 오백 미터쯤 되는 산꼭대기에
화개사라는 절이 있다.
주지스님이 괜찮은 분이셔서
신도도 제법 많았다.
서울이나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오다 ‘평내상회’—지금은 사라진—앞에서 내려 거기서 다시 두 시간쯤 걸어 올라가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1990년)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밤, 집으로 가던 길에 한 아주머니가 화개사 가는 길을 물었다.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간.
그 시간에 그 길을 가신다니 말리고 싶었지만, 꼭 가야 한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집에다 말씀드리고 다시 나와
길 안내를 해드리기로 했다.
문제는 그 밤길이었다.
공동묘지를 타원형으로 끼고 돌아야 했고, 산길로 접어들면 무슨 짐승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길이었다.
손전등 하나, 작대기 하나.
무서움을 떨치려고 이 얘기 저 얘기를 꺼내며 무슨 정신으로 화개사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무사히 절까지 모셔다 드리고 혼자 내려오는 길은 더 으스스했다.
공동묘지를 밤에 지나면 온갖 생각이 몰려온다.
무덤이 열릴 것 같고, 뒤에서 누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을 것만 같다.
바스락 소리 하나에도 소름이 쫙 돋는다.
합기도를 배웠답시고 어줍잖게 쥔 작대기도, 실제 귀신이 튀어나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어릴 때 『전설의 고향』을 너무 열심히 본 탓일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쯤.
아마도 귀신들이 가장 좋아했을 시간대가 아니었을까.
며칠 뒤, 그 아주머니가 화개사 보살님을 통해 고맙다며 책 한 권을 보내왔다.
김우중 회장이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제목은 참 진취적인데,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나라 땅도 넓어서 아직 못 가본 데가 더 많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국정원 직원이었다.

알 수 없는 묘한 배신감.

내가 괜히 오버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한 셈이었다.
그날 밤은 집에 와서도 잠을 설쳤다.
몇 번이나 깨며 괜히 주변을 둘러봐야 했다.


요 며칠 영하 7도에서 10도를 오가는 추위가 이어졌다.

기왕이면 좀 더 화끈하게 추웠으면.
그래야 단단하고 영롱한 얼음이 많이 얼 게 아닌가.

하천으로 얼음종을 자주 찾아다니는 내겐 춥지 않은 겨울이 늘 불만이다.
남녘엔 벌써 매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아직 겨울을 이대로 보내기엔 뭔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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