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여름 곁에서 입추의 바람이 살랑댄다. 여름의 막바지, 피곤에 쪄든 분粉옷을 벗긴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으로 읽다만 책의 페이지를 펼친다. ‘착각의 뒷모습’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사랑과 이별을 데려온다.
‘조급증’이라는 단어 밑으로 젖은 혹이 생긴다. 곧 사라져버릴 멍울이다. 우리의 상흔도 금방 증발돼버리는 성질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물기서린 것들과의 빠른 이별이 고프다. 그러면서도 하냥 그립다.
가슴이 저민다, 아리다는 표현의 상습적 공격에 언제나 무방비상태였던 나는 지금도 꼭 그렇다. 감정을 충분히 내버려둠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詩를 가장한 에세이와 수십 장의 사진이 침범했고, 그들은 그대로 내 안에 눌러앉았다. 이별조차 기약되지 않은 동거인들이 되었다. 마치 오래도록 부둥켜안고 살기 위해 운명 지어진 것처럼.
그들은 詩의 몸짓으로 시도 때도 없이 나풀거렸다. 수필이고 사진이고 할 것 없이 굉장한 속울림을 주는 것이면 나는 전부 詩라 부른다. 그렇다. 詩란 인간과 자연의 모든 것, 문학적 장르로서의 형식적 역할만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어떤 것이다. 심지어 생사를 초월한 가운데, 인간의 도구라 여겨지는 모든 것들의 힘을 단박에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것.
진흙탕 혼돈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詩는 그 자체로 결핍 안의 포화된 낭만이다. 그와 관련해 무한 잠재력을 간직한 그대도 시고 나또한 시인 것이다.
본서 공감포토에세이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을처럼.
# 사랑이라서 증명할 수 없는 詩의 아지랑이 #
눈부신 그녀가 달린다.
바큇살에 휘감긴 햇살이 잘게 부서지며 까르르, 거리의 벚꽃으로 피어난다.(140쪽)
보름달 같았다가 반달이 되었다가 초승달로 얇아지는 눈매를 본다.
뾰족한데도 찔리면 보드라울 것 같고 깊게 찔릴수록 행복할 것만 같다.(141쪽)
열 삽, 스무 삽 아무리 파대어 봤자 사랑만한 것이 나올까. 덜컹거리는 굴삭기로 재고의 땅을 수도 없이 파대었을 건축업자의 심장에도 달달하고도 아픈 사랑이 빼곡했던 모양이다. 이 또한 과격한 작업현장에 노출된 육체의 고통조차 뚫어낼 수 없는 청춘이란 순정이었겠거니.
심박이 셈여림으로 슬프게 춤추어대면 그리움이다.
글집을 보니 연인의 뒷모습이 그리도 절절할 수 있음을 진즉에 알아채버린 그 사내, 속으로 눈물 꽤나 삭혔겠다. 어째서 그는 이별을 내내 응시하며 살아야만 했을까. 이별이 보여주는 풍경들을 필사하느라 허둥대었을까. 혹시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고 짓는데 특자재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이별이 빠진 사랑은 골조 약한 부실공사. 수십 수만 채의 건장한 詩를 건축하기 위해 사내는 그렇게 자신만 아는 통증으로 긴긴 날 앓았으리라. 그리하여 사내의 튼튼한 詩집이 슬프다. 그 집에 걸린 모든 사진도 아프다... 난 뜨내기 입주자에 불과한데도 다만 그랬다.
# 가슴 벅찬 세상의 무늬들에 대하여 #
전신의 슬픔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이는 곳이 발이다. 부유하는 마음을 따라 어디든 디뎌야 했던 기억의 저장소가 발이다.
슬픔의 행로를 지도로 새겨둔 곳이 발바닥이다. 손바닥과 달리 건드리면 간지러운 것도, 발바닥이 웃음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래서 누군가의 맨발을 보는 일은 서글픈 화집의 첫 장을 넘기는 것과 같다..(264쪽)
맨발이 슬프다, 로 시작하는 이 챕터를 소리 내 읽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불과 몇 시간 전, 된장찌개의 풍미를 더하겠다고 댕강댕강 무참히 절단했던 대파의 통곡, 수없이 지나쳤던 가로등의 고독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흑백사진 속 벤치에 모로 누운, 스커트 밖으로 빼꼼히 나온 어느 여인(심상의 의도된 착시다)의 두 발, 그리고 벤치 아래 놓인 낡은 구두. 그저 누군가의 뒷모습일 뿐인데. 노숙자들이 으레 그렇듯 이불삼아 후줄근한 점퍼가 덥혀진 세상. 누군가의 맨발을 보는 건 처절하고도 서글프다.
발은 도대체 무슨 운명으로 인체의 끝단에 위치해 쉼 없이 부려야했을까. 그에게 인간의 수레바퀴가 된 걸 기꺼워할 여유나 있었을까. 발은 통한痛恨이자 숭고한 노동의 산 증거다.
발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눈물을 쏟는 건 어쩌면 세상 모든 무늬들에 대한 사랑이자 애도이리라.
# 산 동안은 맑은 거울을 찾아야하는 의무감으로 #
나는 조금 더 오래 흔들려야겠다. 돌아보면 벼랑 아닌 곳 없었다.(282~3쪽)
서서히 기울어지는 나뭇가지를 보며 임계점까지 생의 무게를 견디다 순간 부러진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리하셨듯이 내게도 생의 무게가 쌓이고 있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고, 알기에 피하지 않는 무게감 말이다.(312쪽)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는 걸 아버지가 되고서야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삶이란 각박할수록 아버지를 닮아있다. 나와 더불어 우리 모두는 어린 아버지로 태어나 어른 아버지로 떠나게 되어있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손주의 아버지가 된 아들. 아들은 아버지가 잠드신 곳에 가 내리 사흘 퍼부은 봄비에 묻혀 울었을 테다. 그랬단다. 절기가 여러 번 바뀌고 눈발이 차곡차곡 쌓인 어느 겨울의 봉분 안에 잠드신 아버지는 여전히 자상하다. ‘다 괜찮아 질 거다. 아무 걱정마라, 이 애비가 있잖니.’ 부러진 건 아버지가 아니라 생의 무게를 알아버린 아들의 경험이 아닐런지. 순수는 둔탁과 흐림 중에 숨어있으면서도 언제나 아무 불만 없이 술래를 자청한다.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은 생을 마치기 전까지 술래가 된다. 내내 정답을 찾다 때때로 지치고 죽기 전에야 겨우 쉰다. 그게 삶이다.
시인이 된 아들을 대견해하고 자랑스러워할 아버지의 미소가,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수차례 길을 잃어도 결코 두렵지 않을 詩가 이 안에 있다. 가슴 미어지는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게 될 그대들을 위한 아버지 같은 詩. 혹은
연인 같은 詩.
다가오는 가을의 어느 날,
어쩌면 그대에게 한 통의 숲이 배달될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숲이 띄우는 러브레터가...
본문 사진 출처 : 탁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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