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물고 날아오른 접동새

by 거울아거울아





1


담뱃대를 꼬다 물은 그의 품새 속에서 나는 순박한 야수를 본다. 궁벽한 초옥을 닮은 이문구 그가 짓무른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것의 발원처를 추적하면 1910-45년 일제식민지 시대, 나아가 한국전쟁- 이란 파편의 맥을 짚을 수 있다.

맥이라 했다. 절단 나고 부서진 데서 멈추지 않고 팔딱팔딱 살아 꿈틀거리는 인고의 몸부림을, 나는 감히 이렇게라도 전달하고 싶다.


전前과 과거過去라는 것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이것이다.

연일 검은 그림자에 묻혀 살자니, 아름다운 산천은 내 조국 위에 눈물을 띄우고, 향기롭던 논밭 내음은 내 이웃과 형제들에게 시름을 얹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노래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이 젖은 갱지에 넋두리를 채우고 한 뙤기도 안 되는 마당에 시를 남기고 응어리진 우리네 조상의 가슴 위에 지울 수 없는 토혈각혈을 새겼다는 것.


그 시절 작가는, 뉘 집 마당 턱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이 뿜어대던 담배 연기에 조국의 시름을 기록했으리라, 이렇게 나는 괘씸한 추측정도를 해볼 뿐이다.



2


생각해 보면 내가 잃은 조국과 가족, 형제는 참 별 것도 아니었다.

잔칫집에서 인절미 하나 먹고 의사의 오진으로 네 살배기 남동생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며, 그 동생 잃은 슬픔으로 아버지마저 구름처럼 흩어져버린 것, 둘을 잃고도 내게는 여전히 건강하신 맹호猛虎 어머니와 언니, 토끼 같은 여동생이 남아 있었다는 것.

또 초코파이 하나 반으로 갈라 나눠먹을 동전 한 개, 장마철이면 변소간 똥물 넘실거려도 몸 뉘일 방 하나, 연탄불로 데운 물 받아 갈색 고무통에 몸담고 묵은 때 털어내던 그 고마운 부엌인지 목욕탕인지 하나-가 있었으므로 수시로 옷고름 적셔가며 살던 우리네 조상 누구누구보다 훨씬 낫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덜 자라고 덜 큰 게 무슨 벼슬이라고 생활보호대상자 아동에게 지급되던 그 연두색 털장화를 나는 죽어도 신고 싶지 않았으나, 털 난 미물(쥐) 하나 그 틈을 노려 자리만 지키고 서 있는 그

속에서 겨울을 났으니, 그것은 그대로 새것이자 헌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날 본 하얗고 예쁜 쥐를 소재로 글을 써 교내과학글짓기상을 받았다.)

한편 다른 친구들과 색이 다른 누런 육성회비 종이를 뭉그적거리며 받아 들고서는 ‘느그 엄마는 왜 그렇게 돈을 안 낸다냐?’ 묻던 담임의 시선을 피해 가뜩이나 소심했던 나는 더 벙어리가 되어야 했던 내 과거와 과거의 과거는 얼마나 아팠던지...



3


작가가 써낸 시대와 인물의 질곡은 나의 것보다 몇 배는 더 아프고 시리다.

민중이란 나무에 열린 모든 가지가 그칠 줄 모르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아물지 못한 채 썩어갔다.

그렇게 쉬이 썩을 것 같지 않았던 나무와 산과 숲이 죄 자취를 감춘 고향을 찾아온 작가는 순간 실향민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지고 만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고향에서의 추억뿐.

집안의 대들보로 무던히도 완고하셨던 할아버지, 그에 반해 비밀조직에서 무신 해방운동인가를 펼치던 아버지, 어린 꼬맹이였던 그에게 어머니 같았던 여종 옹점이, 동생 재롱받아주듯 늘 데리고 다니며 재미난 세상맛이란 맛을 떠먹여 주던 친형 같은 대복이, 동네 허드렛일이란 일은 다 제일처럼 해대면서도 정작 제 실속은 못 챙기던 돌쟁이 석공- 이들은 대부분 어지간히 오지랖만 넓고 정만 흥청망청 써대던 인사들이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넉넉한 품속은 스산하고 질퍽거리기만 한 세상을 단단히 굳혀간다.

진탕 술 마시고 온 동네를 휘저으며 아무리 깽판을 부려도 관촌민의 귀엔 그건 늘 노래였으리라.

창가이자 판소리였으리라. 목이 쉬어 터질 대로 불러대야 제 맛이라던, 그들이 간직한 사람과 마을과 세상은 이문구의 눈과 가슴과 연필을 피해 갈 수 없었을 터.



그리하여 당신들이여!

말맛나는 노래 한 가락 뽑아보려거든 이문구의 관촌수필이란 악보를 필히 펼쳐보라.

그 사이 나는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리.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어 저 아린 속을 풀어주는지...


얼쑤!

접동새 한 마리

노래 물고 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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