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영화 《오만과 편견》
# 죽음만큼 멋진 삶이 또 있으랴, 주말 오전 #
벌레들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 / 우는 것으로 생애를 다 살아버리는 벌레들은 / 몸 안의 모든 강들을 데려다 운다 / 그 강물 다 마르고 나면 비로소 / 썩어도 썩을 것 없는 바람과 몸을 바꾼다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 살아서 남김없이 썩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다 (‘벌레처럼 울다’ 중에서, 16쪽)
국민축제를 즐기는 티브이 속 페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들이 참 낯설다. 무음상태로 그들의 표정만을 살피며 주말을 연다.
엊그제 새벽, 거실 중앙 등이 합선됐는지 큰 스파크가 일면서 전기가 나가는 통에 잠을 설쳤다. 오늘에야 전파사 사장이 다녀간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중앙 등은 제자리를 찾았다.
권태로운 삶에서 나의 욕망 중 하나는 푸르고 먼바다를 망연히 바라보다 때마침 섬 너머로 붉은 태양이 거짓처럼 져가는 모습을 만나는 것, 그로 인해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눈물을 짓게 되리란 진부한 예감과 함께 별 같은 시를 지어 별과 함께 지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상상 속에서나 목격하는 죽음과 그를 따라붙는 유령 같은 어둠을 사는 내내 견뎌야 하는 것이다.
# 가슴불구자들을 위한 기도에 부쳐, 주말 오후 #
사막도 제 몸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 너무 오래 버려진 그리움 따위 / 버리고 싶은 것이다 / 꽃 피고 비 내리는 세상 쪽으로 날아가 한꺼번에 봄날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사막을 떠나 마침내 낙타처럼 떠도는 / 내 고단한 눈시울에 / 흐린 이마에 / 참았던 눈물 한 방울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황사’ 59쪽)
상큼한 소화 즙이 절실한 오후가 달린다.
풍성한 무료를 축출해내고 싶다.
자신의 천부적 우울을 일찌감치 직감하고 재능화 하는 일은 참으로 가혹하다. 행복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이 도전하는 사랑이라 해서 쉬울 리 없다. 그래,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을 기도처럼 해야만 하는 당신들은 오늘도 평안들 하신가. 이 불편한 안부 인사를 건네야만 하는 나는 무척 아프다. 안부가 필요 없다던 거짓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로부터 배제당함으로 詩를 들추어 우울을 표면화하는 일은 이토록 가슴 아린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랑은 막막한 바다 같아서 배라도 띄워야 하고, 때론 황막한 사막 같아서 낙타라도 보내야 하는, 그리하여 모든 계절과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심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흔들릴 대로 흔들려야 비로소 제대로 설 줄 아는 고독이란 본디 혼자라는 절망감에서 싹튼다. 소외를 자청하고 마음이 불구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살짝 문을 열어볼까.
어서들 오시오, 가슴불구자들이여!
# 사랑벼리는 밤은 더욱 예민하여라, 주말 밤 #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 진실로 작별과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ㅡ
그러므로 사람아 /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 혼자 피는 꽃이 / 온 나무를 다 불사르고 운다 (‘獨酌’ 12쪽)
그렇게 좀 쳐다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심술이라도 부린 걸까. 이별전야인 듯 내내 좌불안석인 상대에게 연신 해맑은 미소를 보이는 그(그녀).
사람은 저마다 인화되지 않는 연인의 사진들을 품고 산다. 생생하게 작동은 하나, 현상할 수 없는 머릿속 필름들을.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때때로 그것들을 불사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쉬이 진화될 불길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나는 체질상 사내 알레르기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를테면 내가 위치한 반경 1미터 안에 누구라도 들어올라치면 금세 재채기가 나오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온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것이다. 그러곤 검은 딱지가 지도록 온몸을 긁고 또 긁어댄다. 아! 그러나 이 모든 행위들이 역설적이게도 사랑 갈급자의 서글픈 구애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겠다.
달밤이 너울너울 거리는 와중에 귀뚜라미까지 울어대니 더욱 미치겠는 가을이다.
# 상처 하나하나 낙엽처럼 떨어지도록, 주말 새벽 #
-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 폐허, /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 다친다 / 상처는 나의 체질 /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 오, 저 찬란한 채찍 (‘상처적 체질’ 중, 49쪽)
시인이여, 나도 당신만큼 이름 없이 다치고 다치었다. 누군가 이토록 적나라한 우리의 상처에 적절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나는 꼭 그이와 대면하고 싶다. 나는 모르겠다. 즐겁고 신나는 음악을 듣는 방법을. 그러나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싱싱한 아픔을 제대로 버무리는 건 자신 있다.
아! 바야흐로 이름은 없으나 비슷한 상처로 뭉친 우리들의 찬란한 요람 같은 새벽이 들끓누나.
시인이여, 나도 당신만큼 이름 없이 다치고 다치었다. 내 상처도 덧났다.
우리 이대로 가을이어도 좋을 외로운 몸뚱이만 세워 놓았다.
부디, 상처 하나하나 낙엽처럼 떨어지기를...
단상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