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름의 더께는 언제나 진실하다

by 거울아거울아



독서와 글쓰기 골밀도를 올리는데, 시만큼 좋은 게 없다. 맘에 드는 시구절을 발췌하고, 어제는 꽤 늦게 잠이 들었다. 괜스레 양심이 찔린다. 리뷰 작성은 어설프게나마 성공했지만, 더 치밀하게 끌어안지 못한 시 낭송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반성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부족한 잠을 달게 자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아침 먹으러 올래?' 엄마 전화였다. '아니, 못 가.'


오전 8시 45분. 다시 잠들긴 글렀고, 화장실로 향한다. 변기에 앉아 독서하기. 식탁 위 방울방울 수증기에 둘러싸인 유산균 음료를 응시한다. 냉장고에 있다 강제 퇴거당한 녀석은 바깥공기를 마신 홀가분함을 그렇게 증거하고 있다.


1부 - 1 : 삶의 버거움


삶에게 심신을 내던지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물론 바위도 좀 더 가벼워지는 날이 있긴 하다. 숱한 비바람과 파도에 깎이고 깎인 끝에. 그렇다고 해서 쉬이 몽당연필만 해지지는 않는다. 세파에 찌든 바위는 그저 묵묵히 버틸 뿐이다.


"꿈의 칠할이 직장 꿈이라는 쌜러리맨들의 넥타이가 참 무겁지" ([금란시장]) 그

맞다. 뭐든 무겁지 않은 것이 없다. 오히려 가벼우면 왠지 불안한 삶. "현금지급기 거울 속을 들여다보다 압축된 내 삶 같은 직불카드를 들이밀면 내 몸뚱이는 무슨 열쇠일까 - 열리지 않음만 실컷 열다가 상처로 깎은 열쇠가 되어 결국 이 악물고 호흡 끊으며 죽음만 비틀어 열고 말 존재인가" ([열쇠왕]) 늘 줄은 모르고 줄기만 하는 내 삶 같은 직불카드에 딱 들어맞는 열쇠 구멍 하나 소망하며 문득 올려다본 하늘,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 ([달]) 이렇듯 새카만 밤하늘에도 뭐라도 꼭 하나쯤은 빛나고 차오르는 것이 있더라.


1부 - 2 : 인생무상


주름이 가진 내 삶의 응집력은 언제나 진실하다. 그 주름마저 나이가 꽉 차면 어떻게 될까? 자연 포화될 삶의 끝은 보이지 않기에 막막하고 애처롭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허무하니 허무하도다. 켜켜이 쌓인 희로애락의 꽃이 피는 "이 순간 죽음에 대한 생각은 굵고 삶은 다닥다닥 고목에 핀 매화이련가" ([영구차를 타고 가며])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앞발이 허공을 힘차게 딛고 있는 그림자 밟으며 모든 비상의 첫발은 허공을 짚는 것이라는 희망에 중독돼 우르르 몰려"갔던 우리네 삶에 대한 예비된 진혼곡이다.


1부 - 3 : 그리움 혹은 고독


나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세계, 사람들, 자연을 탓하기보다 누군가 그리워하거나 외로운 것이 유독 먼저인 사람들과 그걸 오롯이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진 것은 없으나, 굵은 씨알처럼 넉넉한 가슴 하나만은 아름다운 사람. 그가 바로 함민복 시인이다. "씨앗은 약속/ 씨앗 같은 약속 참 많았구나// 그리운 사람/ 내리는 봄비 - // 봄비야/ 택시! 하고 너를 먼저 부른 씨앗 누구냐// 꽃 피는 것 보면 알지/ 그리운 얼굴 먼저 떠오르지" ([봄비]) 봄비가 불러온, 그리운 당신은 참 행복하겠다.


2, 3부 : 해묵은 것들의 진정성과 우정 - 실존의 박물관


"죽음이란 저울 위에 쭈그려 앉아 반성하는 앉은뱅이저울이나 자신을 확신해야 무엇을 계측할 수 있다는 듯 감겨 제 몸을 재고 있는 줄자"나 해묵은 모든 것들은 평등하다. 저 실존의 박물관 한 귀퉁이에 시인과 나, 그리고 당신들이 모여 있다. 우린 같은 의문을 가진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 무엇이 될 것인가?'


"죽은 시계를 차고 나니 마치 시간을 들고 있는 것처럼 마치 시간을 어찌할 수 있는 것처럼 시계가 무겁다" ([죽은 시계]) 시계를 들여다보는 눈으로 나는 '나'를, 시인은 '시인 자신'을 바라본다. 시계도 나를, 시인을 바라본다. 잠시 유보 중인 죽음 사이로 살포시 미소 짓는 시간들이 보인다. 보려 애쓴다. "완벽하게 자신 속에 갇혀야/ 자신이 될 수 있다/ 자신을 가두며/ 또 하나의 길을 내고 있는 ○" ( [○ 2]) 마땅히 '나'는 나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양팔저울]) '우리'의 초창기 모습이다. '당신'이라는 '나'마저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의 회고를 읊는다. 시처럼, 시인처럼.


1부 - 4 : 그래도 가끔은 위로


"소멸이 이리 경쾌해도 되는 것인가"([나마자기]) 아무렴. 악몽도 깨는 순간이 있고, 긴긴밤도 마침내 아침을 맞이한다. 그래,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이젠 되었다. 다 괜찮다.








단상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