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이 건네는 메시지가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잡음에서부터 온갖 시각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오늘만 해도 그렇다. 샤워기를 이용해 수동 비데를 사용하던 중 변기 곳곳에 물이 튀었다. 순간 나는 그것이 입 벌린 백색 악어로 보였다. 왜 하필 악어였을까?
다음은 손을 씻던 중이었다. 콸콸콸 콸콸콸. 수도꼭지를 통해 흘러나온 물소리를 듣는다. 물살이 흩어지는 모습을 응시한다. 윙윙 윙윙윙. 마치 파리나 모기 한 마리가 내 주변을 집요하게 날고 있는 듯하다. '왜 이러지? 급하게 전할 말이라도 있나?'
식탁 의자에 앉아 한참을 골몰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SNS 창을 연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톡, 프로필 사진 옆의 문구를 터치한다. 한 번 더 터치. 한글 자판이 열린다. 손가락이 알아서 그 위를 사정없이 날아다닌다. 물방울이 튄 변기가 입 벌린 악어로 보이는 주말의 변방, 세면대의 수돗물이 뭐라 뭐라 주절거려 들어 보려 애쓰는 오후의 상자, 이삼 년 전 내가 쓴 글을 읽으며 그때의 내가 아닌 작금의 나를 혹독하게 괴롭히는 찰나의 영원... 이 어쩌고 저쩌고.
아직도 난 내가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온갖 불안에 집착하면서도 때때로 건강한 정신을 갈구하는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도대체 건강한 정신이 뭐란 말인가. 그런 게 있기나 한가 말이다.
문득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일부))의 문장이 스친다. 병으로써 양약을 삼고,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며,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내 필생의 라이벌이자 배우자인 나는 여전히 '나'를 극복하는 중이다. 어쩌면 돌발적인 연상이 주는 메타포에 천착하는 것은 그에 대한 자위적自慰的 궁여지책窮餘之策인지도 모른다. 그러느라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랑을 둘러보지 못했다. 시간은 고역이고 나에게 사랑은 그걸 담는, 넘칠 줄 모르는 그릇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