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타는 바람의 길로 인도하다

by 거울아거울아






번뇌의 쇼핑으로 풍경을 저어갔다. 고통이란 체인이 맞물리며 바람 속을 후빌 때 강과 산하는 여전히 시간을 살아내고 있었다. 흙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딱딱한 아스팔트가 대기로 솟구치지 못할 때에도 풍경은 은근하게 뿌리내릴 줄 알았다. 결핍의 자리를 채울 줄 알았다. 바람을 밀어내며 잘 있냐는 질문을 할 줄 알았다. 바람을 받으며 제가 품은 마음을 사람에게 물어봐줄 줄 알았다. 그렇게 무른 벅참을 간직한 풍경을 지나가고, 여전히 바퀴는 구른다...




# 얼굴, 그 안밖에 대한 명상


표정을 살핀다는 두려움은 무지한 매너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얼, 즉 혼이 담긴 동굴에 띄우는 당신과 나의 편지를 읽어내는 즐거움이다. 이를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던 응어리 안에 웅크려 살았다.

모습과 표정이 없는 침묵으로만 소통한다는 것은 자괴의 무인도에서 홀로 사는 것과도 같은 일.




# 가벼움으로 생애를 이는 실잠자리와 나

벌레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그들의 무기는 다름 아닌 관절에 있다고 바로 어제 생명의 신비라는 다큐에서 봤다.


며칠 전 새끼거미와 돈벌레를 살생했다. 연약한 생명을 너무 쉽게 단명시킨 죄책감을 느끼던 나는 현재까지 멸종하지 않고 수십억 년을 살아왔다는 아시아실잠자리를 보고 있다. 죽은 평면에서 초록 잎에 매달려 가녀린 몸을 떨며 한창 교미 중인 한 쌍의 실잠자리. 이처럼 생사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에도 생존욕은 본능에 충실하도록 짜인 누군가의 계획을 이행한다.


공기나 빛이 되고 싶다. 나의 비행이 그것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어떤 무거움이라도 감수하겠다.

섬세한 여름이 저문다.




# 시간이 기르는 밭이 그리운 날에는


마대자루에 꽉 들어찬 소금을 보면 내 맘도 하얗게 반짝인다. 자루에 숨은 눈사람 같기도 하고 함박눈이 도망갈까 봐 일부러 모셔둔 것 같기도 하다.


후계자가 없어 방치되다 절멸할 위험에 처한 염전 풍경은 처연하다. 고요하니 아름답다. 시간의 변속기어는 언제나 그리움이었는지 모른다. 소멸의 위기에 대한 그 아득한 편애를 시간은 알 것이다.




# 변하지 않는 것들과 마침내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나 태어나 자랐던 어릴 적 장소는 번화한 극장가가 되었다. 그때 이미 한창 도시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던 터라 덕분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언니 따라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도람盜覽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찾아가는 그곳은 내겐 추억의 영사관이다.


변하지 않는 것과 마침내 변해야 하는 것들 사이에는 ‘인정認定의 애환’이 존재한다. 흐름의 연출이란 예측 불가능한 것이 태반이지만, 모든 욕망의 가지 뻗기에 양분을 주는 건 언제나 결핍이었다는 사실. 그리하여 미완인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들과 마침내 변하고 마는 것들 사이에서 넘어지고 다시 서기를 쉬지 않는 법.




# 다시 처음으로. 자전거를 저어 바람 속으로


가슴 안밖에서 사정없으나 오래도록 간질이는 촉촉함이 나는 좋다. 때때로 그건 날치의 팔딱거림과 웅덩이를 채운 빗물 같아서 나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는 감동으로 벅차다.


오늘 나는 자전거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그림자이고 싶다. 우울한 날, 햇살마저 모두 밀어낸 날, 그 밖의 모든 날에 상관없이. 그림자는 농축된 바람이다.

신속하게 마음을 실어 나를 줄 아는 집배원이다.












단상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