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픔을 잣는 누에라네

by 거울아거울아






# 나는 슬픔의 파파라치. 출근길 1 #





출근길

돌멩이 사이에 핀 잡초

잡초 사이에 핀

돌멩이들을 지나는

빗물 그리고 나



들키고 싶지 않은

슬픔이 매듭을 푸네요



이른 아침, 공기마저

당신을 피하지 못하고

새까맣게 뭉치는 계절


버스에 실려 가는 게

나인지 당신인지

모르겠는 초가을

그렇잖아도 나는

울긋불긋 물들 터였지요.



당신을 한 번쯤 독하게

자주, 만나본 이라면

떠올릴 법한 당신의

벗들을 불러봅니다



은행아

단풍아


여전히 당신과 나를 위한

시가 흐르네요

슬픔의 슬픔에 의한

슬픔을 위한 시가



당신을 나에게

보내온 이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슬픔

역시 당신이랍니다

당신을 알처럼 품고 산

그 여인을 나는 금세

사랑하게 되었죠





# 나는 슬픔을 잣는 누에. 출근길 2 #



당신으로 물든 새를 봤지요

무거운 몸을 낮게 내린 채

구부정거리는 모양새가

어쩐지 수상쩍었죠


그때 마침

빗방울이 뚝뚝


일터에 다다르자

당신은 슬그머니

몸을 숨기더군요




나는 힘들지 않게

당신의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죠

기운과 취향이 제각각인

그들과 부비적거리다

우린 곧 견고한 집도

장만하게 되었지요

계약 한정이 없는

그 집에서 우린

지지고 볶아대었죠


며칠 전 동거인 한 명

들이기로 했던 거 기억하죠?

황.인.숙.

시인인 그녀는

우리와 동류였기에

그녀의 합류로

우린 비로소

완전체가 되었죠


슬픔수급자인 우린

부양가족이 많아

다가올 추석위로금으로

가을까지 건네받았고

밤이 깊어질수록

응집력이 좋은 우린

목놓아 울어 젖힐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 그래도 가끔은,

슬픔 다이어트. 출근길 3 #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점점

비만해지는 당신


나는 본디

당신의 짝으로

당신은 나에게

속삭이곤 했지요

가르릉 가르릉



누구에게나

매너를 갖추고

긴 꼬리 그림자로

톡톡

문 두드리던 당신

나는 당신의 번째

부인이 되어

납작

엎드리곤 했지요



쓸쓸함은 당신의 주식

당신은 나의 주식


나는 내내

다른 먹이를

구할 필요가 없었답니다



배부른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네요


나는 여전히 당신으로

배를 채우는 중입니다


눈물이 길을 나서는군요

얼른

길을 열어주어야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당신




# 내일은 또

내일의 당신이 떠오를 것. 퇴근길 #



나는 당신의 출퇴근 시간을

가늠할 없지만

여운을 일으키는

당신의 능력을 압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다가와

말 걸어준 유일한 당신



밤夜이 내립니다

버스가 달리네요

나도 달리죠

당신에게로













단상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