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뜨거워지는 것들의 발견

사진 출처 : 시인 안현미

by 거울아거울아



장인을 본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물건 씨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장인을 함께 본다. 숯을 볼 땐 나무를, 주전자를 볼 땐 주전자 장인(제조업자라는 단어보다 좋다)을 본다.


단박에 뜨거워지는 것들은 모르는 세계가 있듯이, 그 느긋함의 분수령들에게도 엄연히 물격이 있다. 맵시와 향을 지니고, 품성과 재치가 있으며, 인내하고 겸손할 줄 안다. 반면 그들의 면전에 서면 부끄러워 자주 고개를 쳐들지 못할 정도로 나는 가볍디 가볍다. 그러므로 재촉하지 않고 은근히 뜨거워지는 것들의 겸양이 삶이 되는 순간의 터득이야말로 내가 그나마 무게를 갖게 되는 지점이다.


숯과 주전자는 서로 공명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들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간다. 나의 한밤도 자연 발화되기 시작한다. 미움과 반목을 태우고, 시기와 이기를 태운다. 재가 되어 흩날리는 탈속 앞에 엄숙해진다. 아까운 것들을 남기지 않고 버릴 수 있는 여유를 지닌다.


힘겹게 반들반들해진 주전자의 표피를 보는 사람은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법. 셈 없는 진득한 것들끼리의 소통은 값질 수밖에 없다. 왜 하필 쇠여야 했고 고무 손잡이가 붙었는지, 왜 나무는 숯이 되고 말았는지 숯과 주전자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근면과 효용에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칠 뿐.


눈이 날린다, 재처럼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들의 고마운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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