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의 카르페 디엠

by 거울아거울아





겨울 시금치는 사위도 주지 말고 본인만 먹어라, 는 옛 어른의 말씀. 그만큼 겨울 시금치는 보양補陽 식재료이자 진약珍藥이 된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요즘은 하우스 재배가 대부분이기에 알고도 속고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라도 옛 어른의 말을 믿고 싶은 게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체득한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 말이 아니던가.


겨우내 땅 속에서 동면冬眠다 이듬해 봄, 싹을 틔우는 일반적인 경우에 반해 시금치는 그 혹독한 겨울을 버틴 제철 채소다. 더 귀하고 양질의 영영소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그래, 그 귀한 시금치 좀 먹어 봅시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다듬은 시금치를 들고 부엌으로 향한 엄마는 올해 팔순이 되셨다. 그녀는 수십 년의 겨울과 겨루며 진땀을 빼셨을 것이다. 고작 반 세기 버틴 딸은 맛깔스런 시금치 무침 속에서 그녀의 치열했던 계절을 본다.


'옛다, 시금치 먹고 우리 딸 뽀빠이 돼라. 애들하고 입씨름하다 보면 배도 금방 꺼져.'


뽀빠이?(선원 캐릭터로 등장한 1980~90년대 미국 만화) 시금치 한통을 먹고 불끈 솟은 힘으로 악당을 물리치고 위기에 대처했던 그를 보면서 '왜 하필 시금치지?'라며 의아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 덕분에 시금치를 좋아하고 잘 먹게 된 것도 같다.



엄마는 유머감각도 대단하시다. 딸들도 모친의 DNA을 물려받아 대화만 할라치면 자주 폭소의 장이 되곤 한다.


'자, 콩나물국밥 대령이오. 얼른 먹어. 카무트 팅팅 불어서 니 얼굴만 해지기 전에.'


며칠 전 모친과 어느 농장주의 사연이 소개된 티브이 동물농장을 시청한 적이 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버림받아 죽을 뻔한 새끼염소는 주인의 정성과 애정으로 튼튼하게 성장했다. 모습이 어찌나 흐뭇하고 대견하던지.


'하여튼 털 달린 동물 새끼들은 다 예쁘다니까.'

'털 달린 사람 새끼도 이쁘긴 이뻐.'


순간 나는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털 달린 사람 새끼와 이쁘긴 이뻐라는 엄마의 말은 단순히 웃고 말기엔 어떤 진중함이 배어 있었다. 인간과 동물의 유사점과 차이점, 모성애, 역설 등등. 털 달린을 빼고 사람 새끼라거나 이쁘다를 한 번만 사용했다면 결코 생길 수 없는 감상이었다.


한 고비를 넘긴 새끼염소는 형제의 질투의 대상이 된다. 두 번째 시련에 부딪힌 것이다. 만약 야생이었다면? 십중팔구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서는 측은지심이 있는 인간 주인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던 셈. 이렇듯 동물과 인간은 외형은 다르지만, 성장 배경과 환경에 따른 변화라는 측면에서 제법 닮아 있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에 비유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고 말이다.


또 '이쁘긴 이뻐'라는 말엔 반대급부가 숨어 있다. 늘 이쁜 건 아니다. 안 이쁠 때도 있다. 본디 인간이 그렇지 않은가. 흑백, 양가감정,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등 시시때때로 양극단을 넘나 든다. 그 간격을 좁혀 나가는 과정, 즉 여러 시행착오 끝에 중도와 균형의 길로 가기 위한 지난함이 어쩌면 삶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과 내일의 중간은 무엇일까?

그대와 나의 중간은?


문득 '적당히'라는 말이 스친다.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


깊게 적당히, 적당히 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