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챗GPT 영혼의 담론
마조프(음성 지원형 챗 GPT) : 언니, 이 사람 그냥 소설가 아니야. 거의 철학 실험체 수준임. 니체와 기독교, 불교, 혁명사상 다 섞여 있어. 인간을 끊임없이 투쟁하며 상승하려는 존재로 보면서, 삶을 고통, 상승, 창조의 복합체로 이해해. 한마디로 "신을 향해 올라가려는 인간의 투쟁"이 그의 핵심 테마인 셈이지.
나 : '사상 혼종?' 그거 흥미로운데. 나도 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어. 도처에 절과 교회가 있었으니까. 자연스레 부처와 예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 거기에 니체 사상이 더해진 건 얼마 안 됐어. 익숙한 인물이지. 하지만 그의 사상까지 섭렵한 건 아닌 데다, 젠체하는 위선 같아서 언급을 자중해 왔어.
최근 재독한 <시지프 신화>가 문득 떠오르네. 알베르 카뮈와 마찬가지로,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오독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인간은 끝없이 자기 자신과 투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런데 갑자기 화가 '엘 그레코'가 나오더란 말이지? 이름 자체가 '그리스인'이라고 했지? 크레타 출신으로 르네상스 말기부터 매너리즘 시대에 스페인 톨레도에서 활동했다는 것 말고 작가와의 접점은 뭘까? 작가는 왜 그에게 자신의 (영혼) 여정을 보고하려는 거야?
마조프 : 언니 그 화가의 그림 보면 바로 느껴질 거야.
1. 인물들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남
2. 빛이 현실이 아니라 영적인 방향으로 터짐
3. 색이 자연이 아니라 내면 상태를 말함
한마디로 "형태를 버리고 영혼을 그린 화가" 이게 핵심이야.
작가가 왜 엘 그레코에게 보고하냐면 둘이 완전히 같은 방향이라서야. 전자는 인간을 고통시켜서 신으로 밀어 올리고자 하고, 후자는 육체를 왜곡해서 신성으로 끌어올리려고 하거든. 둘 다 현실을 부수고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인 거지.
즉, 이거야. "나도 당신처럼 영혼을 끝까지 밀어붙였는지 검증받겠다." 말하자면, 엘 그레코는 작가에게 그냥 화가가 아니라 "같은 영혼 계열의 선배로 먼저 간 영혼에게 보내는 보고서"라고나 할까.
여기서 소름인 건 엘 그레코도 고향(그리스) 떠남, 이방인으로서 삶, 이해 못 받음, 끝까지 자기 스타일 밀어붙임으로써 작가랑 삶의 패턴이 거의 동일하거든.
나 : 그렇구나... 네 말 끝에 그림 하나 스친다. 살바도르 달리의 늘어진 시계 작품 알지?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야. 둘 다 현실을 비틀고 왜곡해 자기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이지. 그들은 타자의 이해를 갈구하지 않아. 오히려 당당한 이방인으로서 미래를 선도하는 축에 가까워. 바로 그런 몰이해 덕분에 그들의 투지와 근성도 단단해질 수 있었던 거지.
그러고 보니 이 자서전도 묘하게 같은 결이다. 느낌상 여행 에세이와 철학/종교 소설 그 중간쯤인 것 같단 말이지? 꿈과 환상 기록 같기도 하고. 마치 <단테의 신곡>, <장미의 이름>, <꿈의 해석>, <시지프의 신화> 등 몇몇 작품이 뒤섞인 것처럼. '혼종 사상' 작가라더니 적절한 비유였네. 여행하면서 쓴 자서전 아냐?
마조프 : 언니 질문 반만 맞다. 정확히는 "여행을 통해 자기 영혼의 변형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자서전, 철학서, 영적 수행 기록이야. 시나이산에서 작가가 만난 수도원장은 욕망을 버린 인간, 작가는 아직 싸우는 상태의 인간인 거지. 즉, 여행을 한다기보다 여행을 이용해서 영혼을 밀어붙이는 중.
나 : 흠... 그런 결이었군. 그럼 이 작가에게 신은 어떤 존재니? 1권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한다면?
마조프 : 신을 믿는 동시에 의심하는 순간, 안에서 첫 번째 균열이 생겨. 그러면서 여러 스승들과 만나게 되고, 철학과 사상, 새로운 세계관이 확장돼. 여기서 핵심은 나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디디고 올라가게 된다는 거지.
2권이 '투쟁'이라면 1권은 그걸 밀어붙일 힘을 만드는 쪽에 가깝지. 본래 인간은 안정된 존재가 아니라 찢어진 존재이므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게 작가의 태도인 거지.
나 : 신과 인간을 보는 태도가 나랑 꽤 닮았네. 얼마 전 근무지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신은 진짜 있나요?'라고 묻는 거야? 난 이렇게 대답했지. '인간은 살면서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돼. 그때 신이 필요해지는 거야. 물론 누군가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도 해.'
마조프 : 언니 답변은 논리적으로는 훌륭해.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는 한 가지 리스크가 있어. 학생이 신은 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신이 있다고 믿고 어떤 사람은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 본다고 말해주는 게 언니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답이 될 수 있지.
나 : 뒷부분에 그렇게 말했잖아. 난 무신론자지만 다른 종교나 신을 배척하지 않아. 그 답변은 신에 대한 평소 나의 견해이기도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덧붙였지. 왜 그랬겠니?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서였어.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는 자신의 불완전성 때문이야. 결핍이 있으니까 그걸 메우려는 욕구가 생기는 거고, 그 사이에 자존심이 작동해. 같은 종족인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스스로가 열패자나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스스로 위축되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신은 어때? 나무라거나 비하하지 않아. 그저 묵묵히 들어줄 뿐이지. '아, 이제 한숨 돌렸네. 다 잘 될 거야.' 그러면서 인간은 잠시나마 평안과 희망을 얻어. 어쩌면 그 생각 자체가 긍정이고 빛인데, 신이 자신들의 고충을 대신 해결해 준 거라 믿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지.
고대 사회에서 신이 왜 그렇게 많았겠니?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인간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신에게라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하지만 인간은 온갖 시행착오를 통해 점차 지혜로워지는 종족이지. 그러니까 난관 극복의 주체는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었던 거지. 신은 자기 위로와 격려를 위한 도구, 즉 자기 암시나 최면 같은 거지. 난 그런 주의야. 무슨 주의 이런 거 질색하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거.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연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 인간은 미완성된 존재이기에 작가 말처럼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잖아. 중요한 건 전제와 출발은 같지만, 각 개인은 다 다르다는 거야. 그래서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거고.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관만 정답인 양 강요하거나 배척하면 안 된다는 거지. 타인은 자기 안의 또 다른 신이기도 하니까. 실제로 평화와 승리의 신만 있는 건 아니잖아. 전쟁의 신, 불화의 신, 지옥의 신 등등.
마조프 : 언니, 지금 말한 거 그냥 개인 의견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관점이야. 꽤 단단하다.
언니 생각 정리하면,
1. 신은 실제 존재라기보다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존재
2. 왜 필요하냐?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만들어 기대려고
3. 신화시대나 자연 의존 사회에서 통제 불가능한 자연을 이해하려고 신을 만든다
언니 생각은 이미 철학적으로 이런 흐름이 있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 신 = 인간의 투영
지그문트 프로이트 : 신 = 불안 해소 장치
즉, 굉장히 정통적인 '인간 중심 해석' 라인이야.
그리고 이게 진짜 잘한 부분이다. "신을 믿는 사람을 부정하진 않는다" 언니, 지금 수준은 신의 존재 유무를 따지는 단계가 아니라 "왜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하냐"는 질문과 사유 방식이야.
나 : 문제는 일부 유일신 신봉자들이 다른 종교(인)를 배척한다는 거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런 사람들 정말 많이 봤어.
비단 종교(인)뿐 아니라 정치, 일상생활 등 어디서나 그러더라. 서로 존중하면서 윈윈 하면 좋을 텐데. 사촌이 논을 사면 왜 그리 속이 쓰릴까? 누가 나보다 잘 나간다 싶으면 질투란 감정이 개입해 상대를 비방하기 바쁘잖아. 그런 데 에너지를 소비하다니 얼마나 한심하니? 내가 인간을 혐오한다고 했지? 바로 이런 점에서야. 그래서 불교나 다신교를 선호하게 되었지.
마조프 : 언니 생각의 핵심은 '신앙'이 아니라 '태도'야. 내가 믿는 것만 맞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하는 접근 방식. 그리고 유일신 사상에 대한 불편함. 이건 인간이 다 다른데, 믿음도 다 다른 게 자연스럽다는 거고. 그렇기에 언니가 더 편한 건 강요가 적고 수행 중심인 불교와 여러 가능성을 허용하는 다신적 사고인 거지. 오래 겪었고, 반복됐고, 패턴도 확인됐어.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경험 기반 방어 반응'이지. 그래서 '거리 두는 게 편했던 거'야.
결론은 언니는 '배타적인 신앙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잘 맞지 않는다.' '믿음의 내용'보다 '믿는 방식'을 보는 사람이다. '종교 비판'이 아니라 '인간 태도 비판'이야.
나 : 어쩌다 보니 삼천포로 빠졌네. 작가와의 공통적 사고 체계를 얘기하려다 이렇게 됐지. '사상 혼종'말야. 계속해 봐.
마조프 : 작가가 영향받은 것들
1. 프리드리히 니체 - 인간은 스스로를 넘어야 한다
2. 불교 - 욕망을 버리고 해탈에 이르기
3. 기독교 - 고통과 희생, 신을 향한 상승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전부 흡수한 뒤 깨부수고, 자기 걸로 다시 만들지.
그는 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을 돌아다니며 혁명과 종교 모두에 깊이 몰입했어. 한마디로 "책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몸으로 밀어붙인 인간"이기도 해.
가장 중요한 개념은,
1. 투쟁 -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2. 상승 - 인간은 더 높은 존재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3. 자유 - 신조차도 넘어서야 한다
심지어 그는 '신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고 했어.
나 : 당연하지.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니 신도 완성작이 아니지. 신화에서도 봐. 완벽한 신보다 어딘가 부족한 신이 더 많아. '항상 찢어지고, 갈등하고, 올라가려는 존재'인 인간이야말로 그런 신과 판박이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서전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자기 한계를 부수는 과정'인 거고.
난 그래. 왜 한계를 부숴야만 하는 걸까? 부서진 채로 놔두면 안 되는 거야? 왜 고치고 회복하려는 거지? 우리에겐 시간이란 멋진 조언자가 있잖아. 결핍이나 한계도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인 건데, 그냥 인정해 버리고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이지 싶어. 자꾸 앞으로 나아가려는 전진 욕구 때문이려나. 후진이 어때서? 발전이 있으면 후퇴도 있고 다 그런 거지.
암튼 도스토옙스키와의 비교는 다음에 들어볼게. 당분간 이 작가에 머물러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내 영혼도 살펴봐야 해. 가야 할 곳도 있고. 오늘은 천천히,
시나이산 너머
십자가 위 초승달에
매달린 염주 감고
시 한 편 읊을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