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늘 반영구적인 것들을 좋아했다. 이를테면 태엽을 감아서 작동하는 오르골이나 시계 같은 것들, 태양광이나 자연 에너지로 움직이는 모든 기계들, 손으로 돌려서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기까지도. 그래서 심심할 때면 몇 시간이고 그런 기계들의 설명서를 읽곤 했다. 활자가 보장하는 내구성에 경탄하면서.
뭐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엄청난 기계치에 그것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돌이켜보면 아마도 나는 그저 반영구적이라는 단어에 매료됐던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매료.
아무리 오래 시간이 흐르더라도, 결국은 내 손길이 닿지 않더라도 변함없이 다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 낡되 소멸하지 않는 확실성. 그런 확답을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건 분명 약속이니까.
수없이 많은 것들이 다가왔다 멀어지고 손에 넣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매번 견뎌야 하는 불확실성,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는 불안을 그런 식으로 고정해 단단히 잡아두고 싶었던 걸까. 반영구적이라는 것은 예측이 가능하고 안정된 상태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텅 빈 지구에 남겨져있을 그것들을 상상하노라면 어쩐지 안도감이 드는 걸 거야. 태엽을 감아주면 아무리 낡았더라도 무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할 기계인형들과 오르골, 수많은 시계들이 만들어낼 작은 소음들. 그것으로 다시 차오르는 시공간은 그렇게 외롭진 않을 테니까. 설명서에서 안내한 대로 틀림없이 작동할 그 확실한 약속들.
역시 언젠가는 정말 좋은 시계를 사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