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업 관련 글
10여 년 전에 플랫폼은 망하고 콘텐츠 제작사는 살아남을 거라고 예언했다. 누가? 내가..(미안합니다.)
당시는 왓챠같은 신생 플랫폼들이 각광받을 때였고 포탈인 네이버나 카카오도 의욕적으로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던 때였다. 지난 일이니까 하는 말이긴 한데 당시에도 한계가 눈에 보였다.
플랫폼은 채워 넣을 콘텐츠가 끊임없이 제공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 문제는 그 속도를 못 맞춘다는 거. 플랫폼사가 마음 먹고 자체 제작을 해도 미디어 쪽은 투자 대비 흥행 확률이 비례하질 않는다. 더욱이 최대한 다채로운 콘텐츠(한 회사에서 제작한 것이 아닌), 다양한 제작사로부터 제공받는 이질적인 콘텐츠들이 성공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미디어업계에서 투자란 여기저기 뿌려놓고 기대 없이 수확해 보는 노다지 찾는 작업에 가깝다.
최대한 많은 제작사가 여기저기에서 리스크를 분산해 최소한으로 지고 제작을 꾸준히 해서 퍼올리는 게 성공방정식이란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도 하락할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제작을 하는 레거시 미디어들의 힘은 꾸준함에 있다.
배우와 작가, 촬영감독과 관련 인력을 길러내는 힘은 큰 한방이 아니라 작고 잦은 제작환경들이다. 작은 기회, 작은 경험, 작은 협업들이 조류가 되어야 강이 흐른다.
큰 한방은 나머지를 무너뜨린다. 작은 제작들이 사라지게 되니까.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자본이 떠난 자리에는 폐허만 남을 확률이 높다.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간 자원을 대줄 수 있어야만 토양은 성장하는데 그들은 그럴 이유가 없다.
망사용료랄지 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뽑아가는 로컬에(그렇다 서울도 로컬이다) 수익을 재분배하는 방식을 방통위 같은 곳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 좋을 장사 아닌가 이거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꾸준히 거대자본과 상관없는 제작사들도 위기로 내몰렸다. 낙관과는 다르게 제작의 기회도 오히려 줄어들었다. 적절한 개입 없이는 낙수효과가 판타지에 가깝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이제는 안다. 자연스러운 분배는 환상이다.
제작지원을 하는 기관들이 넷플같은 한방을 운운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지원은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정말 투자 VC 같은 상황에서 할만한 이야기다. 지역 축제, 영화, 출판, 방송 모두 지원을 컷 한다. 넷플같은 한방이 없다고. 기생충이나 피지컬100같은 게 아니라고.
지원기관들은 큰 한 방이 아니라 바로 이 작은 조류들을 꾸준히 공급할 각오로 비전을 잡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방송, 영화만이 아니라 출판, 예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제작하고 방송을 만들고 출판을 하고 예술을 하는 곳이다. 대형 자본이 일률적으로 만들어 올리는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위해서는 지역의 영화제가
필요하다. 지역 방송이 필요하고 지역 출판 축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작더라도 끊김 없이 작은 자본을 마련해 그걸로 콘텐츠를 만들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나가거나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암튼 이런 맥락에서 제작을 꾸준히 해오는 레거시 미디어에 다시 한번 흐름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이기에. 어려운 만큼 규모나 예산 규모를 줄여야 하겠지만 꾸준히 제작하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미디어 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책임감 있는 비전일 것이다.
전부터 이야기해 왔지만 제작을 멈추자고 말하는 자가 범인이다. 가장 멀리 해야 할 리더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이거다.
어떻게 꾸준히 제작을 하며 버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