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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Dec 04. 2024

2024년 서울의 겨울

그곳에 너무 많은 삶이 있었다.

실없이 허튼소리를 자주 하는 편인데도 광주 출신 친구들과는 그 어떤 농담도 하지 못했다. 김용현이 계엄을 제안했다는 소문과 국민의 힘 의원들의 집결지가 국회가 아니라는 소식에 핏기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계엄 해제를 결의하는 걸 보고도 한참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혹시나 다른 결과가 터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불안해 심장이 쿵쾅거렸다.


날이 밝고 나서야 사람들이 올리는 해학 있는 밈과 게시글들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김옥균의 삼일천하까지 끄집어내는 걸 보며 고등교육의 국가답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저 총들이 모두 발포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도시에 공기처럼 드리워져있던 많은 영상과 사진들 속에서 광주 사람들의 몸에는 모두 총상이 나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얼룩무늬가 있는 교복을 입은 채로, 고운 치마를 입고 아이를 업고, 길을 가다, 집회에 나갔다가, 시위를 하다, 쿠데타 군과 싸우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으로 쌓인 산더미 아래서 성장했다. 어떠한 인연도 사연도 없는 나조차도 그렇게 알게 모르게 보고 듣고 배웠던 것들이 깊이 인이 박혀 머리에 저장됐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저지를 수 있는 무도한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겪어야 했던 모욕과 절망의 시간들을 지켜봐왔다.


계엄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광주시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발적인 충돌이 순식간에 과열되어 들불처럼 번지는 폭력이 초래하는 참상을, 아는 얼굴들이 사라지고 어디선가에서 처참하게 발견되는 광경을,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비명을, 절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도시가 봉쇄되고 정치는 길을 잃으며 시민들은 고립되어 반동분자로 누명 씜을 당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이 도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오월이면 당연스럽게 시작되던 기획취재들, 애써 마음을 너무 기울이지 않고 싶어서 건조하게 바라봤던 화면 안에 그 모든 장면들, 찾아가면 항상 들러 물끄러미 바라봤던 영정으로 가득한 추모의 공간이 일시에 떠올랐다. 생에 두 번의 계엄 선포를 지켜봐야 하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 단단하고 선량하고 평범하고 하염없이 나약해 보이다가도 엄청나게 강인해 보이던 얼굴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헬기가 뜬 국회 상공을 보며 80년 광주가 이제는 서울이 되겠구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그 자신 역시 고통받았던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이, 그 영정 사진들이 떠올라서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사건들을, 기록들을,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국회로 달려 나갔던 수천 시민들의 모습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눈에 담았다. 80년의 계엄을 물리적 저항으로 저지했던 5월 광주의 봄을 지나 24년 서울의 겨울은 헌법의 힘으로 계엄을 저지했다. 국가의 주권은 언제나 국민에게 있음을 변함없이 증명했다. 사상자 없이.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긴 하구나. 더디고 멀더라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누군가의 죽음과 상실과 슬픔의 위에서.


전차 앞에 서서 국회의원들을 어떻게든 국회에 들여보내려했던 시민들이 단단히 버티고 선 발 아래 깊은 뿌리가 탄생한 근원을 기억해냈다. 추모의 공간에 단정히 모셔진, 그 거대한 사당이 우리 발치 아래 느껴지는 구나. 거기서부터 뻗어나온 단단한 뿌리가 굵게 굵게 전차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구나.


좋은 사람들은 그 때 다 죽었어.


친구들과 한국의 근현대사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의 심장 속에도 기어이 들어가 박힌 거구나. 80년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닿아있는 거였구나. 알게 모르게. 이렇게 우리 안에 살아서. 우리 안에 살아있어.


극도로 긴장했던 밤을 지나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화도 내고 농담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다 느닷없이 펑펑 울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압도적인 감정들이 일시에 터져 나오면서 뭐가 그렇게 서럽고 슬펐던지. 이름도 사연도 인연도 없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다가 언제나 그곳을 찾을 때면 하곤 했던 말을 반복해서 되새겼다.


그곳에는 너무 많은 삶이 있었다.

그곳에는 너무 많은 삶이 있었다.




그러니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이 얼마나 거대한 모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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