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공무원 탐정기 <당조궤사록>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가

by soulblue

요즘 중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 당조궤사록. 당나라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들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주인공인 노릉풍과 소무명은 짝을 이뤄 기괴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현재 시즌 3까지 제작된 인기작이다.

당조궤사록은 결국 공무원들 이야기다. 상부에서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황족들의 정치놀음이 살벌하게 벌어져도 당의 국가 운영 기반은 관료제였다. 도의와 법치의 틀로 촘촘히 엮어낸 이 그물은 사회 전반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어찌 됐든 황족이라도 도의에서 벗어나 법규를 위반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문무는 당의 관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분류체계다. 그리고 노릉풍과 소무명은 각각 무관과 문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존재들이다. 그것도 충신.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왕을 사랑해서 연군지정을 불러대는 그런 종류의 허접한 충신이 아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제와서는 우습게 됐지만 이 두 사람이 섬기는 것은 왕이 아니라 민중이다. 비록 신분제 사회지만.


따라서 법규와 도의가 충돌할 때 이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궤도를 슬쩍슬쩍 벗어난다. 그 어떤 가치도 민중의 이해보다 선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족이나 상위 관료, 권세가들 사이에 얽힌 복잡한 권력관계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하급 관료로서 주어진 권한이 크지 않다 할지라도 인명이 달린 일에는 월권이 월권이 아니다라며 정교하게 짜인 위계를 일순에 전복시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은 관료제라는 형식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며 권한 밖의 일이라 할지라도 책임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실행옮김으로서 역설적으로 효능있는 관료제를 완성한다. 유능한 실무진이자 영혼이 존재하는 공무원. 그래서 두 사람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은 통쾌하고 즐겁다.


이 외에도 소무명과 노릉풍 사이에 위치한 앵도라는 여성 검객은 속세와 국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강호인으로서 도의를 대변한다. 호쾌한 성격으로 두 사람이 망설일 때 먼저 행동하는 돌격대장이기도 하다. 앵도는 관료들의 영역에서 완전히 비껴 나있는 무법자로 노릉풍과 소무명이 놓치는 지점을 채워 넣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각각 인의, 법치, 도의라는 각자의 신념대로 움직이며 이상적인 통치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이러한 세 사람의 역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는 시즌 2의 29화다. 권력의 문제로 신상에 변고가 생긴 노릉풍이 평소답지 않게 인명이 걸린 문제에도 몸을 사리며 미적거리자 그를 설득하려던 앵도와 소무명은 크게 화를 내며 노릉풍을 질타한다. 인의를 모르고 도의를 저버린다면 수많은 법규를 제대로 지키더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뜻이 다르다면 이제 다른 길을 가겠다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떠나는 앵도 뒤로 소무명이 노릉풍에게 일갈한다.


卢凌风何在!

노릉풍 허짜이!


번역하자면

노릉풍, 자네는 어디에 있는 가.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그를 찾는 이유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정체성, 그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버리려 드는 비굴함에 대한 비난이다. 정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는 것이야말로 노릉풍과 소무명 두 사람이 추구하는 지고의 가치다. 소무명은 도의 앞에 뒤로 물러나는 노릉풍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무능한 것.


여기서 능력은 사유하는 힘을 뜻한다. 사고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지닌 권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권한은 목적을 위해 세워진 규범으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것이 법치의 근간이니 목적 없는 권한은 억압일 뿐이다.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애초의 목적에 대해 끝없이 사유해야 한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 모든 상황은 동일하지 않으니 결국 매 순간마다 유연하게 휘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규범을 유연하게 운용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권한은 언제나 따라붙는 책임이 있고 자칫 잘못해 틀에서 크게 벗어나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권력을 집행하는 자들은, 다시 말해 책임이 있는 자들은 스스로 일거수일투족을 매번 세밀히 점검할 수밖에 없다.


나를 바로 세우고 이웃을 바로 세우며 결국 천하를 바로 세운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 平天下)는 이런 엄격한 자기 객관화와 끊임없는 사유로부터 비롯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무사유의 위험성을 경고했듯이 사유하지 않은 채 기능만 하는 존재는 결코 정명에 도달할 수 없다. 당조궤사록은 이 두 하급 관리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좋은 관료되기란 결국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소무명과 노릉풍은 수많은 관계로 밀도 높게 짜인 집단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면서도 그 안에서 개인을 지우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사사롭게 무리 짓지 않는다는 공자의 이야기처럼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제대로 알고 중심을 단단히 쌓아 올릴 경우에만 가능하다. 조화롭되 쓸려 다니지 않도록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황제에 대한 충성과 애국을 내세우면서도 가장 깊은 곳에서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로 아는 것, 즉 정명을 위해 살아나간다. 나를 알고 내가 하는 일을 알며 그 일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안다는 것은 결국 다시 나 자신을 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유하지 않고 명령대로 살아남는 것은 금수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 가. 노릉풍과 소무명은 툭하면 스승(스승이 그 유명한 적인걸이다)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두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 앞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일이다. 죽음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도록 살아가는 것.


卢凌风何在!


되는 대로 살고 시키는 대로 일하며 내키는 대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와중에 사대천황처럼 큰 눈을 부릅뜨며 외치는 소무명의 벼락같은 일성이 반갑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바로 무협의 협이다. 인의와 법도, 도의가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합쳐지는 수행이다. 무엇보다 너의 이름 앞에 떳떳한 삶을 살아가라는 목소리. 변명을 늘어놓기에는 놀랄 만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바람처럼 상쾌한 질문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가.


당조궤사록 꼭 보시길. 오랜만에 보는 무협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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