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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Nov 04. 2022

위로하는 사람들


위로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드물어서 귀하다. 많은 이들이 지치고 닳았을 때 곁에 잠시 자신을 의탁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


가끔, 아니 사실 자주 위로를 잘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누구보다 내가 위로가 필요해서 그런 것 같다. 무엇이 그들을 구성하는 가. 잘 말하기보다는 잘 듣는 게,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자아를 죽이는 게 아닐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자신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음을 알리고 싶을 때, 빛나는 조언을 하고 싶을 때, 상대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교정하고 싶을 때, 사실은 반복되는 징징댐을 멈추게 하고 싶을 때 불쑥불쑥 쏟아나는 에고의 충동을 억누르거나 지워내고 위로받을 사람을 위한 빈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자신을 지우고 텅 빈 공기가 되어 상대의 슬픔과 분노를 담아내는 일은 부처나 예수의 그것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간혹 위로를 잘하는 것이 천성인 사람도 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적절한 말과, 무엇보다 기꺼운 행동으로 상대방을 품어주고 곁을 내어준다. 그런 사람들은 바다와 같아서 잔물결 정도는 거뜬히 안아낸다. 큰 요동침 없이.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애정 하기 때문에 날뛰는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게 잘되면 상대방은 바닥난 에너지가 차오른다. 의탁했던 몸을 바로 세우고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


정말 좋은 위로자는 자신의 흔적을 너무도 잘 지운 나머지 상대가 기댔던 기억조차 지워버린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모든 위로는 애초에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상흔을 남긴다. 위로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위로하는 사람에게도.


위로하는 사람으로 기능한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비로소 내 안에 남은 상흔들을 바라본다. 잘 아물지 않는 마음들. 그래서 위로하는 사람들의 안위도 궁금해진다.


다시 홀로 남겨져 나무처럼 서 있는 그 사람들.

언제든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한 외피 안에

크고 작은 자신의 상처와 타인의 상처가 뒤섞여

그걸 소중히 품고 있는 사람들.

고단함을 지저귀던 새들과 발치에서 울어대던 짐승들이 떠나가고 난 자리에 여전히 서있는 그 사람들.


위로하는 사람들.


이런 글을 

상대를 위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평안과 아니 무엇보다 같은 마음으로 이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이들이 곁에 있길 기원한다.


내가 바라듯이.


https://blog.naver.com/cine_play/222917559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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