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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Nov 09. 2022

세상은 누가 유지하는 가

은은하게 돌아있는.

‘이 회사는 여자들만 일하는 곳 같아요.’


라고 누군가 말했다고 한다.


는 말을 듣고 꽤 크게 웃었던 것 같다.


그게 사실 같아서.

꽤나 적확해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곳에서 제일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모두 은은하게 돈 K장녀들인데.


이 말을 덧붙이고 싶어졌다.


매일매일

이렇게 일이 많을까


올해 일도 아직 다 못 끝냈는데 내년 제작 지원용 기획안을 맡아서 하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기획안도, 제작도, 지원도, 정산도.

레귤러도 특집도.


보통은 대개 한 사람이 한 개씩만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은 없는데 해야 할 것은 더 많고

거기에 윗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돼 중요하지 않은데 우선순위로 올라가는 일들이 얹어진다.



벌어야지.


근데 왜 회의는 (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막내급들만 하는 겁니까. 핵심전력이요? 그건 부대가 있을 때나 하는 말이고.


어쨌든

저 이야기를 듣고 편집을 하다가

막히고 또 막히고 막혀서 잠시 후배의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돌아보니까


티 안나는 궂은일들을 도맡아서 하고 있는 게 공교롭게 다 장녀 출신들이란 말이지.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이유모를 의무감에 시달리며

의젓하게 감정 표출은 자제하고 살다 보니 결국은 은은하게 돌아버린.


가끔 세상은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근사한 기획과 혁명, 무수히 많은 반짝이는 발명과 발견들. 그러나 그걸 유지하는 이가 없다면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허무한 것들에 대해서.


발광하듯 빛나는 K푸드에 대한 작은 프로그램을 제작 중인데 미나리니 kpop이니 그 이면 뒤에는 해남에서 보성에서 영양에서 나주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계속해서 매끼 음식을 차려냈던 어머님들이 계신다.


빛은 안 나지만

누구도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지만

손에서 손으로

그녀들의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 것들이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세계를 단단히 지탱하고

유지하고 돌보고 보듬고 무너지지 않게 살펴왔던 거라는 걸, 매번 새롭게 깨닫는다.


그냥 멸망해버려도 좋을 텐데 싶기도 한데 아직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라도 있는 건지 어쨌든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이 세상은 그녀들에게 분명한 빚이 있다.


빛은 빚에 따라가야 하는데.

미리 당겨 쓴 거니까 정산도 그쪽 먼저 해줘야 하고.

근데 세상이란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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