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사교 여행
부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일에 대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더는 이야기 하지 않게 됐다. 반복되는 실망,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실망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채로 누적되는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비전 같은 것들, 그렇게 동료들과 함께 모험하는 이야기들을 사랑하면서도 보답받지 못하기에 스스로 퍼붓는 애정에 짓눌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상태가 계속됐다. 시동을 끈 차 운전석에 앉아서 한참을 허물어져가는 건물을 지켜보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욕심이 너무 없어.]
새벽부터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지인의 문자에 그런 대답을 했다. 뭘 하고 싶다는 욕망, 그걸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별로 남아있질 않았다. 아니 애초에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부산을 가야겠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겹쳐 록페스티벌도 함께. 좋아하는 밴드가 공연을 한다며 부산을 갈 거라고 웃는 그녀들의 쾌활함 덕분에 바로 버스를 예매했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페스티벌 같은 거겠지 싶어 할로윈처럼 영화감독 코스프레 같은 것도 하나요? 순진한 오타쿠 같은 질문을 했더니 지인들이 웃었다. 네. 꼭 코스프레하고 가셔야 해요. 아니면 영화제니까 드레스 입으셔야 하고요. 영화의 전당에서는 구두로 갈아 신으시면 돼요. 이것 봐. 검은 머리 짐승이 가장 잔인하다고.
1박 2일 짧은 일정은 다른 약속과 기묘하게 중첩되는 바람에 2박 3일로 늘어났다. 미리서부터 휴가를 내놨었는데 회사에서는 자체 행사를 이유로 일정을 조정해 주길 바랐다. 당일 날, 분명 오전 내내 회사에 있었는데도 아무 말 없다가 버스에 몸을 싣고 도시를 떠나기 시작하자 걸려오는 업무전화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러니까 일정을 섬세히 조율하지 않은 채로 닥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즉흥적으로 해치우는 업무방식은 극도로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정말이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패턴 때문에 뭐 하나 제대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어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이 오면 대체로 심란했다.
언제나 이동 중 읽으려고 책 한 권은 챙겨 다니지만 사실 책을 읽은 지도 정말 오래됐다. 영상 일을 하기 시작한 후로 대체로 활자보다는 모니터를 더 많이 들여다봤고 호흡이 짧은 문장이 아니면 좀처럼 눈이 가질 않았다.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기도 힘들었고 ADHD처럼 수시로 작업을 바꿔가며 처리했다. 잠시 책을 꺼낼까 고민하다 그냥 창 밖을 지켜봤다. 빠르게 바뀌는 풍경. 휙휙 도시의 전경이 바뀌니까 숨이 좀 트이더라고.
전날 미리 알아둔 파스타바를 찾아 비교적 조용한 전포동으로 향했다.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 예상보다 한산한 좁은 골목은 작고 취향이 좋아 보이는 가게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울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주방일을 배우고 부산에서 이제 막 가게를 시작한 셰프가 바를 사이에 두고 따끈하게 만들어 건네는 파스타 플레이트는 꽤 근사했다. 먹물 파스타 면에 성게알로 맛을 낸 보타르가와 버섯을 함께 낸 뇨끼. 식감이 잘 살아있는 데다 소스 발란스도 좋은 파스타와 뇨끼를 먹으며 식당 주인과 손님이 할만한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영화 일 하시나요?'
'아뇨. 전 방송 쪽에서 일해요.'
'영화제는 사람이 많이 오나 봐요.'
'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굳이 한 마디 더.
'주윤발도 왔대요.'
영화시간에 맞춰 서둘러 영화의 전당으로 향하며 일로 온 적은 많지만 부산을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날 가장 마지막 상영시간이었을 텐데도 영화관 앞에는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거나 바닥에 앉아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감각이, 무언가를 좋아해서 기꺼이 찾아 나선 사람들로부터 느껴지는 열정 같은 것들이 그 광경에 스며들어있어서 그게 참 좋았었다.
요셉 앙기 로엔의 <가스퍼의 24시간>, 인도네시아
마르코 벨로키오의 <납치>, 이탈리아
안드레아 디 스테파노의 <아모레의 마지막 밤>, 이탈리아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나의 셀렉션.
인도네시아 영화인 가스퍼의 24시간은 늦은 시간임에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감독은 물론이고 제작자며 배우며 상당한 규모의 스태프들이 영화제에 참여했고 하필이면 바로 앞 좌석이 내 자리라 상영 내내 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영화 자체는 다소 엉성했지만 실제 관객들, 그것도 타국의 관객들과 직접 마주하는 제작자들의 흥분과 설렘, 그리고 긴장감이 느껴져서 그게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더라고.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어린애 같은 자기중심적인 즐거움, 그 순수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법이라. 어떤 영화든 사람이 만드는 거니 같은 패턴일 수밖에 없다. 만들고 기뻐하고 평가받고 다시 만들고. 원래 그런 거였잖아. 너도 그걸 기억하고 있잖아.
관객과의 대화는 스킵하고 연락이 닿아 한 평론가 분을 만났다. 그분의 글을 읽기 시작한 건 좀 된 일이지만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라, 정말 나답지 않은 짓이로군하면서도 아무렴 어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온라인으로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좋은 점은 어느 정도 상당한 정보를 확보한 채로 대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취미로 다도를 하시던데 밤이 오면 셧다운 되는 센텀시티의 저문 거리에 마련된 노상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고풍스러운 다기를 꺼내시는 게 아닌가!
'다기를 가지고 다니세요??'
'이렇게 지인을 만나면 꺼내서 차 한잔 건네드리려고요.'
그 마음이 방금 다기에 말아낸 말차처럼 따뜻하고 상냥해서 정말이지 근사한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감독들, 영화들, 그리고 영화의 대사들을 성대모사를 곁들여서 실컷 깔깔대며 나누다가 헤어지는 거리에서 산업이 지닌 명암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했다. 방송이든 영화든, 비슷하게 몰락하고 있고 화석처럼 뒤쳐지고 있지만 귀중한 유물처럼 지킬 가치가 있는 것들 아니겠는가. 하이쿠처럼 짧은 대화였지만 미처 다 풀어놓지 않는 더 많은 말들을 지레 짐작하면서 숙소로 들어왔다.
[욕심이 없는 것 같아.]
언제나 의욕이 넘치는 친구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말차에 독을 탄 것이었던가)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오전 첫 영화인 납치를 보러 갈 준비를 했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지인이 추천해 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한두 시간 잠시 눈을 붙였다가 제시간에 일어나서 체크아웃을 하고 이런저런 짐들을 백팩에 쑤셔 넣은 채로 영화관을 향하면서 해냈다. 내가.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일찍 길을 나서다니. 엄연한 시네필이로군. 우쭐하며 영화관에 들어서는데 거의 100m 정도는 될법한 대기줄이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시네필 여러분. 제가 건방졌습니다. 당신들의 열정을 미처 몰라봤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바람에 졸면 어떻게 하지 잠시 걱정했었는데 영화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명화처럼 아름다운 구도와 시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위해 거침없이 흐르듯 붙여낸 시퀀스들. 한 아이의 영혼을 영토 삼아 대리전을 치르는 종교와 정치의 민낯과 그로 인해 황폐해지는 인간의 내면을 추적해 내는 영화는 실로 한 사람의 영혼도 제대로 구원하지 못하는 두 관념의 본질을 노장의 노련한 재봉으로 유려하게 포착해 냈다.
작은 모니터 화면이 아니라 와이드 스크린을 통해 전사되는 장면들. 숨을 죽이며 영상 속으로 빠져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각 경험. 아주 오래됐지만 익숙한 그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의자 안으로 깊숙이 몸을 기댔다. 이런 거였지.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번 여행의 부제는 실은 사교여행. 영화가 끝나자 영화제를 보러 대구에서 온 지인을 만났다. 이 분도 처음 만나는 분이라 어색하면 어떻게 하지 조금 걱정이 됐었는데 이미 집에서 나서면서부터 뭐가 됐든 세상은 망해버려라 식으로 지치고 피곤하고 그래서 삐뚤어진 부분이 있었던 터라 다시 한번 아무렴 어때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내가 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의 손에 티백으로 보이는 작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상냥하셔라. 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이런 고민하는 게 생경하죠?'
'몰랐었죠. 이럴 줄은.'
비슷한 고민들, 다른 관심사들, 각자의 사정과 상황들 하지만 서로에게 좋은 일들이, 내가 지금 힘든 만큼 누군가는 그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선량한 마음이 느껴지던 대화들. 한 번의 저녁을 함께 먹고 두 번이나 카페를 가면서도, 아마도 분명 그녀에게도 작은 일탈이었을 이 순간이 즐겁고 다정해서 못내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도로 선이 잘 안 보일 거 같다며 걱정하던 그녀가 또 걱정돼 무사히 잘 도착하시면 연락을 달라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숙소로 돌아와서는 쓰러져 자는 바람에 도착 문자는 오전에 확인했다. 상냥한 마음에도 체력이 필요하구나.
급하게 변경한 일정 때문에, 더군다나 결제 오류로 전에 예약했던 숙소가 취소되는 바람에 황급히 예약한 숙소는 운 좋게도 마침 바닷가 근처였고 비가 내리긴 했지만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바닷가 쪽을 힐끔거리며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취향에 맞는 미니멀한 공간이었고 깨끗하고 아늑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오면 <킴스 비디오> 상영 굿즈였던 스탠리 큐브릭 가면을 선물해 주겠다는 트위터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시간이 비는 족족 일정을 맞춰보았지만 견우와 직녀처럼 엇갈리는 운명의 수레바퀴 앞에 매번 만남이 좌절됐는데 부산에서 만나기로 한 또 다른 친구가 마침 그 분과 친구라 그 기괴하면서도 귀여운 가면은 결국 마지막날 손에 쥘 수가 있었다.
이틀 동안 평소보다 많은 활동량과 다소 무거운 짐 덕분에 녹초가 되어 꿈조차 꾸지 않고 잠들었던 난 새벽같이 눈을 뜨고 말았고 나이 듦을 한탄하며 준비를 하고 숙소 앞 방파제를 거닐었다.
'부산 바다는 시원한 맛이 있어요.'
부산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바다가 없는 도시에서 자란 나는 바다가 있는 풍경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저 문장이 근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울창한 숲이나 나무가 아니라 탁 트인 수평선을 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까? 실은 나의 도시에서 만나기로 했던 지인들을 부산에서 마주하며 부산사람이 안내해 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비가 갠 하늘로 구름 너머 햇살이 장막을 걷으며 다가오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 빛이 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싶더라고.
광어와 돔을 구별하지 못하는 나의 부산 지인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유쾌하고 내가 다소 어리숙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해도 흥미롭게 들어주던 다정한 사람이어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내내 무척 안전하고 평안한 기분이었다. 이것 정말이지 희소한 일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약한 소리를 하면 질색을 하기 마련이거든. 어떤 판단이나 조언 없이 그저 있는 상태 그대로를 직시하고 상대의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정말로 소중히 대해줘.
돌아갈 버스 시간을 몇 번이고 연기하면서, 각자의 상황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 대학시절처럼 어울렁 더울렁 차이나 타운으로 몰려갔다. 군만두가 기가 막히다는 가게들 앞을 서성이며 비교적 줄이 짧은 곳 앞에 서서 대기하면서 GD의 싸인을 보고 수근거리기도 하고.
비바람이 불어서 다소 차가운 공기를 뒤로 하고 홍콩 영화에 나올법한 중국식 가게에 앉아서 특별한 재료 없이 달걀과 채소로 맛을 낸 따끈한 수프를 후후 불어 마시고 수십 년간 쌓인 감으로 대충 튀겨냈지만 귀신같이 절묘하게 튀겨진 군만두를 와삭 베어 물면서 어딘지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어서 몸이 노곤해지더라고.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 군만두가 자꾸 생각나는 건, 만두 자체가 맛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그 기억들 덕분인 것 같아.
고민했던 일들은 사실 여행전이나 후나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고 휴일인 오늘도 업무 전화를 받았지만 어찌 됐든 정말로 폭발하기 전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느끼고 있다. 아마도 알았던 것 같아. 스스로가. 잠시 어딘가로 떠났어야 했다는 것을. 과부하 돼 자신도 모르게 혹사당하던 정신과 몸이 그렇게 하라고 부산으로 가라고 계속 속삭였던 걸 거야.
그러니까 부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앞으로의 일들은 사실 잘 모르겠다. 대책이 없다면 없는 거고 방향성을 잃은 것도 잃은 거니까. 하고 싶은 작품도 일도, 사람과의 관계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여전히 잘 모르겠어. 문득문득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럭 겁이 나기도 하고 스스로의 무력함을 절실하게 느끼기도 하면서도 어찌 됐든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가급적이면 일상이 여행처럼 상냥하기를 기대해 볼 수밖에.
내일 출근이네. 젠장.
그러니까 다시 볼 때까지 다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