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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Jun 30. 2023

우리의 시간을 채우는 것들

믿을 수 없이 작고 취약한

그러니까


어.. 그러니까 저는 자주 길을 잃었다고 느껴요.

실제로 길을 찾는 게 쉽지 않은 방향치이기도 하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의심의 깊이는 깊어지고 설령 틀린 방향으로 왔다고 해도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돼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주 망망대해에 떠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스스로가 내렸던 결정들, 그리고 스스로가 내렸다고 믿었던 선택들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을까 의심하면서요.


결국은 행복에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는 생을 유지하는 인간의 시간이 짧다면 짧지만 또 길다면 길어서 현실 안에 마모되고 바래지기 마련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성장이 느린 저는 오히려 어릴 때보다 지금 더 쉽게 방황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오늘 같은 날이면

그러니까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어떤 친구가 제가 사는 곳에 보내준 응원으로 가득한 동화책 같은 걸 읽다보면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기도 하는 거예요.


여권을 갱신하려고 오랜만에 눈 화장을 했는데 화장한 김에 셀카나 좀 찍어볼까 했는데 엉엉 우느라 그건 어렵게 됐어요.


우리의 시간을 채우는 건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이렇게 타인의 배려와 마음에 기대어 사는 믿을 수 없이 작고 취약한 자신을 발견하는 사소한 순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번 힘들 때마다 작은 힘이 되었던, 그러니까 어떤 생명체라도 좋은 에너지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식물의 식자도 모르는 내게 커다란 야자나무를 선물했던, 언제나 징징대며 우울한 이야기를 반복해도 초인적인 힘으로 전화를 끊지 않았던, 함께 밥을 먹고 예쁜 것들을 보러 다녔던 수많은 작고 취약한 나의 애정하는 지인들이 만들어낸 작고 사소한 그 많은 순간들이 기억나면서 이렇게 불현듯 파도처럼 하루를 덮쳐올 때가 있어요.


아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어쩌면

내가 그토록 진저리 치며 싫어했던,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피하고 싶었던 끔찍한 순간들이 아니라

그럼에도 지지 말라고


각자의 힘듦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 간에 나누는

우정과 응원 같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닐까 믿게 됐어요.


언젠가는 이 마음들을 저도 돌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해야 할 일들을 다 뒤로 한채 대책 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동화책 선물을 받았다는 말을 길게 풀어썼네요.

읽었던 문장 중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마무리할게요.



세상의 경이로움에

너의 경이로움을 더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모두 어떤 상황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받은 다정함을 한 조각 나눠드리고 싶은 오후입니다.


모두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부디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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