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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Jun 24. 2023

죽음 곁에 가득한 사랑이라니.

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무덤을 발굴하며 작은 단서들을 찾을 수 있을 뿐.


전시관으로 들어서며

다시 한번 상기한다.


우린 지금 죽음의 장막 안으로 들어서는 거라고.



국립중앙박물관의 토우전은 죽은 이의 무덤에 함께 매장한 흙으로 만든 기물들에 대한 전시다. 실물 크기처럼 보이는 등잔이나 그릇들도 종종 보이지만 대체로 이 특별한 물건들은 작고 투박하다.


실제로 기능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토기나 토우는 세밀한 묘사가 드물고 추상화되어 있다. 또 사람들의 눈앞에 전시하기 위한 것도 아니기에 이것이 어떤 사물인지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바다.


집의 모양을 한 토우와 등잔들, 새와 호랑이, 뱀과 개와 같은 작은 동물들. 그리고 죽은 이의 곁에서 함께 했을 작은 흙인간들이 유리관 안에 각각 모여있었다.


토우는 무덤의 주인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그가 마을의 권력자였는지 여성이었는지 아이였는지. 어느 종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시대를 보냈었는지.


전시물들에 관한 고고학적인 설명은 매우 쉬운 단어들로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무척 흥미로웠다. 하지만 역시 더 관심이 가는 건 그보다 더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언제나처럼.


토우는 그보다 더 세밀한 것들에 대해서 말을 하거든.



사람이 죽으면 그를 기리는 물건들을 함께 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토우는 이에 사망한 이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지닌 형체들을 함께 챙겨 보내는 수호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제의적 물건이다.


어떤 것들을 만들어 망자와 함께 보냈을지 전시관을 돌며 구경한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인적인 물품들을 훔쳐보는 셈이다.


큰 개의 모양을 하고 있는 토우가 있다. 아주 투박하고 엉성했지만 굉장히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마치 무리의 애정하는 인간을 만난 것처럼. 무덤의 주인은 아마도 개와 함께 살고 있었고 무척 그를 아꼈던 것 같다. 남은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한다. 흙덩이를 뭉쳐 그의 저승길을 안내할 형체를 만들고 반가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개의 얼굴을 빚어낸다. 슬퍼하는 모습이 아니라.


전시가 심화될수록 더 작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귀여운 토우들이 등장한다. 입구에 놓인 제의적 성격이

짙은 물품들보다 더 사적이고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사소한 물건들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사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토기나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들이.


이쯤 되면 이것은 더 이상 마냥 제의적인 물품만이 아니다. 이건  이제 사진의 일종이 된다. 함께했던 가장 중요했던 순간들을 충실히 그려낸 기록들. 광학을 이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서 망자와 나눴던 시간들을 뭉툭한 흙으로 빚어냈던 것이다.


함께하는 행렬, 무리 지어 앉아있던 모습, 사냥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낮춰 숨어있는 익살스러운 모습들. 저 사냥은 정말 엉망으로 실패했겠는 걸 싶을 정도로 엉성한. 축제 속에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마을 사람들, 어쩌면 실력이 형편없었을지도 모를 마을 연주회 풍경들.


어떤 권력자의 무덤이라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함께 묻어둔 토우들은 대단하고 특별한 행사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보냈던 평범한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었을 거라는 사실에 어딘지 마음이 움직였다. 못생긴 토우들에 담긴 애정이,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어찌해 볼 수도 없는 불가역적인 거대한 운명 앞에 소중한 이를 어떻게든 지켜내려 했던 사람들의 소망이 아리도록 무력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이의 안식처에 기름을 부은 등잔과 그를 보호해 줄 작은 동물들을 함께 챙겨 보내는 그 마음이,


마치 저 작은 토우사람들처럼 아주 작고 연약하지만 모두 한데 모여 그 압도적 절망과 슬픔을 함께 이겨내보려 했던 노력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상상해 보니 무척 따뜻하고 사랑스럽더라고.



무덤에 함께 매장된 등잔은 실제 사용하는 등잔에 비해 크고 여러 개의 솟대로 나뉘어 있어 더 밝고 더 오래 빛을 낼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긴 어둠의 시간을 뚫고 안식의 땅에 무사히 가닿기를, 홀로 떠나는 그 여행이 부디 안전하고 평안하기를 기원했던 남겨진 사람들의 바람이 흙에 단단히 뒤섞여 축복의 언어로 되살아난다.


수 백 년의 시간을 넘어서는 아주 긴 여행이었지만 끝끝내 부서지지 않고 남아있는 흙인형들이 건네는 말은 아마도 그런 거겠지.


‘여기에 우리가 함께 있어요.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부탁을 했어요. 자신들 대신 당신을 지켜달라고. 그러니 우리는 당신의 길을 함께 걸을 거예요. 그곳이 아무리 어둡고 두려울지라도.‘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노래하고 춤을 추며 동물을 쫓고 행진을 하는 저 작은 형체들이 문득문득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외롭지 말라고 우리가 함께 있을 테니, 너를 오래 기억할 테니 외롭지 말자고 속삭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 울고 싶어 졌고.


이토록

죽음 곁에 가득한 사랑이라니.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국립중앙박물관,  2023. 06. 22.


p.s 전시는 10월까지니 가까이 계신 분들 추천합니다. 죽음을 다루지만 사랑으로 가득한 전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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