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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브메 Jan 08. 2023

가장 돈 많이 쓰고 가장 힘들었던 해

뒤늦은 회고

"올 한 해 어땠어?"
"...가장 돈 많이 쓰고 가장 힘들었어."

진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네.


몇 주 전, 예전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2022년에 대해 1분 브리핑 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분야를 배웠다, 새로운 팀에 가게 됐다, 새로운 직무에 관심이 생겼다 등등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던 중, 어느덧 잠자코 듣고 있던 내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이 글의 제목과 같았다.

[가장 돈 많이 쓰고 가장 힘들었던 해]


너무 힘들었는데 힘든 만큼 돈을 써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3번이나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여행에 돈 펑펑 쓰다보니 일을 쉬이 놓을 수도 없는 악순환에 놓인 건 덤이고.


누구보다 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왔고,

짧다나마 커리어를 망치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해왔지만

온 인생을 통틀어 이토록 어렵고 되는게 없는 시간이 없었다.


이사, 이직, 이혼처럼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게 '터'를 바꾸는 일이라더니,

바다에 빠진 육지동물처럼 허우적거리기만 하다 한 해가 끝나버린 것 같았다.


나아진다고 느끼다가도 무너지고, 잠깐 일어섰다가도 다시 주저앉는 시간의 반복.


타자를 두들기고 있는 지금마저도 패배감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꾸역 꾸역 버텨내며 내가 올해 성장한 것들을 적어본다.



1. 퍼포먼스 마케팅

광고기획자로 일하면서 때때로 "이렇게 기획서만 쓰는 게 정말 브랜드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광고 집행을 하긴 했지만 TV광고는 요즘 시대에 메이저 마케팅 수단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실제로 내가 가장 많이 지갑을 여는 광고는 인스타그램 피드 광고 였는데, 소비자의 마음을 훔친다면서 온라인 광고 하나 어떻게 돌리는지 모르는 내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퍼포먼스 마케팅이란 것의 실체를 알게 됐다. 어렴풋이 용어의 정의만 알고있던 CTR, CPC, CPA 등의 지표들을 눈 빠지게 들여다보며, 어떤 소재, 어떤 타겟팅이 유입에 가장 용이한지 비교하는 이 과정에 조금은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결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TVC와 달리, 유입과 전환이 소숫점 단위로 계산되어 성과 측정이 가능하고, 이로 인해 다음 캠페인 때는 더 구체적인 목표치를 세울 수 있단 것도 장점이었다.


아직 마스터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레벨업 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분야.


2. 커리어

 매일같이 "분명 좋아하는 브랜드의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왜 안 행복하지?" 라는 질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브랜드를 좋아해도 그 브랜드가 포함된 산업까지 좋아하지 않으면 일을 잘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나이키를 좋아한다고 나이키 마케터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포츠 웨어 산업까지 좋아하고 깊은 관심을 가져야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마케팅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야 경쟁사와 타겟에 대한 인사이트가 쉽게 보이니까. 나이키 팬들의 드로우/오픈런 문화, 다른 패션 브랜드들의 콜라보/에디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나이키에 아무리 큰 애정이 있어도 소비자를 경쟁사에게서 뺏어올 수 없다.


사실 이게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나는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산업이 얼마나 좋고 재밌는가.

나에게 지금 사명감이라는 게 있는가.

최근의 내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지는 않은가.


3. 돈

코인, 주식 다음에 부동산이었다. 최근에 집값이 많이 폭락해 잦아들긴 했지만, 남들이 뭐하면서 돈 버는지 궁금했던 나는 부동산 공부도 하는 중이었다.


어제는 추운 날씨에 8시간 임장을 했고 덕분에 감기에 걸린 것 같지만

그래도 송파구 지역을 파노라마처럼 돌아보고 생활권에 순위를 매겨보는 경험이 꽤 신선했고

이건 비단 부동산 투자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집을 사거나 창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종잣돈 모으기 시작한 것도 셀프 칭찬해.

이렇게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


적고 나니 뭐가 없어보여 더 우울해지는데 기분 탓이겠지?

한가지만 더 남겨보자면, 2022년엔 다름 아닌 '나'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나의 습관, 나의 환경, 나의 사람 등

많은 풍파를 통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잘 느꼈고

이를 통해 앞으로 내가 진정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부디 2023년의 끝에는 1월의 나에게 떳떳한 12월의 내가 되어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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