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브메 Oct 10. 2022

우아한 형제들의 ‘이게 무슨 일이야’를 읽고

트레바리 무경계-호랑이 독후감, ‘배’카라쿠네

1.

트레바리 무경계-호랑이 클럽의 네 번째 책으로 우아한 형제들의 ‘이게 무슨 일이야’를 읽었다.


이 책을 고른 건 그저 우연이었다. 한 달동안 가볍게 참여했던 마케팅 스터디, GI-LOG 기록 오프라인 써밋에서 이 행사를 기획하신 기업브랜딩 팀장님의 강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토스가 ‘금융’이듯, 배민은 ‘일’을 키워드로 가져가고 싶어요


이 한마디에 줄곧 배달, 맛집, 음식을 연상시켰던 치믈리에, 떡볶이 마스터즈, 신춘문예 등의 캠페인이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고, [배민의 NEXT BRANDING=일]이라는 노드가 생겼다. 대체 얼마나 선진적인 일 문화를 가지고 있길래! 이런 ‘일’에 진심이자 자신만만한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나? (구성원들부터가 워낙 임플로이언서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행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게 무슨 일이야’는 ‘일’에 대한 고민을 주제로 다양한 조언을 해주면서도 ‘기업 문화가 이렇게 중요한데, 배민의 기업문화 좀 볼래? 배민은 일하기 좋은 회사, 일 잘 하는 회사, 일 하고 싶은 회사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래, 괜히 네카라쿠'배'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지.


2.

사실, 배달의 민족은 취준생 때 너무 가고 싶던 기업 중 하나였다.


디자이너였는데 어쩌다 창업을 해 CEO가 되어버린 김봉진 의장님의 스토리도 신기했고, HSAD와 함께 아이덴티티를 위트있게 풀어낸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B급 광고도 좋았고, 직접 참여한 배민 치믈리에 시험도 내겐 매우 특별한 경험이라, 나도 이렇게 재미있는 브랜드 경험을 소비자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그렇게 입사 지원을 하려고 우아한 형제들 채용 페이지에 들어갔는데 글쎄, 첫 번째 문항이 너무 어려웠다.

“시나 소설, 노래나 작품으로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글자 수 제한 없음)


그리고 브랜드 마케터라면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포트폴리오 역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나를 골라 소개해주세요” (PPT 5장 내외 혹은 1분 내외의 영상)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곤 나루토같은 애니메이션 뿐인데, 취미도 메이플스토리같은 게임 뿐인데, 뭔가 있어보이는 어려운 철학 책이나 현대 소설을 예로 들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노래도 범위가 너무 넓어서, 솔직하게 K-POP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산다고 적어야 하나, 무엇을 소개하든 나를 드러내는 인사이트가 있어야 할텐데, 과연 내가 듣는 수많은 숨듣명 중 나의 열정을 표현할 가사가 있긴 한가 고민이 들었다.


그렇게 마감일 D-1까지 고민하다, “나는 좋아하는 게 많으니까 한 가지만 소개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Favorite Things”라는 노래를 개사해 나를 소개하는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다. (그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가 맞다)


본문은 부끄러워서 차마 담을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나열한 가사형 자기소개서가 완성되었고 포트폴리오는 그 ‘좋아하는 것’ 중 하나를 골라 진짜 ‘소개’하는 PPT를 만들게 되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탈락, 24살 대학생의 노력 치곤 가상하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장난으로 지원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서류였을 것이다.


일단, 배달의 민족을 왜 오고 싶고, 왜 내가 뽑혀야 하고, 날 뽑아준다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한 개도 적혀있지 않았고, 질문의 핵심이었던 “넌 뭘 좋아하고, 그래서 어떤 일까지 해봤는데?”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진짜 좋아하는 것들만 ‘나열’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읽은 '배민다움'같은 책을 보면 "한 분야를 오래 좋아하고, 그래서 덕력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데 포트폴리오 내용 역시 “내가 이걸 이만큼 좋아해서 뭐도 만들어보고 뭐도 운영해봤어요!” (영감을 얻은 창작,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가 아니라 “내가 이걸 이만큼 좋아해서 이런걸 참여해봤어요” (단순 참여,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에 그쳤었다.


그렇게 2019년의 나는, 첫 취준에 야심차게 지원한 5개의 서류 중 하나를 탈락했고, 나머지 4개 중 1개 회사에 붙어 취뽀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배민에 얽힌 나의 일 이야기. 시작도 못해본 게 킬포지만.


3.

‘이게 무슨 일이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한명수 CCO님의 “일 잘하는 척 하는 법”이다. 처음엔 일 잘하는 척을 알려준다기에 “뭐 이런 내용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섯 가지 방법을 재밌게 읽어내려가던 것도 잠시, “이제 다 아셨죠? 이 정도만 해도 일 잘해보여요. 근데 일 잘하는 척에 그치면 안돼요. 부끄러움을 느껴야 돼요.”라는 결론에 머리를 한 대 텅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가짜로 살면 언젠가 부끄러워지잖아요. 그러니 그 때부터는 진짜 일 잘하는 방법을 찾아야 돼요.”


이 한 줄로 내가 ‘선 아는 척, 후 공부’했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나도 몰랐지만 이제껏 내가 성장해왔던 본질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나 역시도 일을 진짜 잘했던 게 아니라, ‘일 잘하는 척’을 하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었다.


꼼꼼하지 못했던 내가 꼼꼼한 척 하려고 여러 번 검토했더니 좀 더 꼼꼼해졌고, 휘발성 아이디어만 많았지 플로우 하나 쓸 줄 모르던 내가 엣지 있는 기획서들을 베끼다보니 어느새 나만의 기획서 쓰는 방법이 생겼고, 모르는 게 많았던 내가 아는 척 하려고 야금 야금 검색하다보니 어느새 아는 게 되어있더라.


가면을 쓰다보면 가면을 닮기 마련이니.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진짜에 가까워지고 있었나보다.


4.

하고 싶던 마케팅 일을 하고 있지만 무언가 충족되지 않아 "일이라는 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평생 이 일만 해야 하나,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시도해볼까, 일을 빼면 난 뭐지" 등의 어려운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에 툭툭 던지듯 팁을 알려주는 사수같은 책을 만났다.


물론 일 고민이 끝난 건 아니고, 오늘도 내일도 이번주도 다음주도 올해도 내년도 어쩌면 평생 일 고민을 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약간은 숨통이 트인 기분, 그저 막막하진 않은 기분, 잘 하면 이 길에도 해답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은 소모가 아닌 수련이니까.

다름 아닌 '성장하는 나'를 위한 시간이니까.


다짐하건데, 내일부턴 "이게 무슨 일이야!"를 외치며 출근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