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나만큼 많이 운 사람이 있을까
나는 ENFP다. 그것도 F가 100%다. 그래서 내가 마주하는 모든 감정들을 흡수하는 편이다. 내 옆에 누가 울면 나도 같이 울고, 누가 웃으면 나도 웃음이 난다. 누군가 해결하기 어려워보이는 문제는 내가 대신 해주고 싶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끙끙댈 때 도움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옛날에 회사에서 사내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 있다. 사수님이 해보고 좋았다길래 나도 따라 한건데, 아니나 다를까 그 때가 이직한지 3개월 차라 벅차고 힘든 일이 많아 심리 상담가 선생님께 얘길 털어놓다 눈물이 났다. 그런 날 보고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일 할 때 감정을 심하게 쓰시는 편이네요."
일과 나를 동일시해 업무 상의 피드백을 나에 대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협업에 있어 갈등은 필연적인데도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습관, 주변을 크게 의식하느라 남의 표정과 말투 하나 하나에 신경쓰는 성향 등이 필요 이상으로 크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쓰는 것이 조직 전체로 보면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게 너무 과하면 오래 일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었다. 감정을 쓰는 것도 적당히 해야된다는 걸. 그러나 매 퇴근길에 나는 하루 동안 오갔던 연락들을 더블 체크 용도로 다시 되짚어보곤 했는데, 그 중 조금이라도 날이 선 연락이 있으면 자기 전까지 마음이 쓰였다. 그렇다고 아예 안 들여다보기엔 불안했다. 아는데, 고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됐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SNS 상에서 어떤 분으로부터 내 일에 대해 '마치 뒷광고를 당한 것 같아 불쾌하다'는 의견을 받은 적 있었다. DM이고, 처음 보는 사람이고, 아마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사람인 걸 알았음에도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뒷광고 아닌데 왜 자기가 오해해놓고 난리야'라는 생각과, '내가 의도치 않게 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마음이 쓰였다.
또 회사 운영 원칙 상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는데, 내가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하자 회사에 대한 불만을 내게 쏟아낸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이 화가 난 대상은 내가 아닌 걸 아는데도, '화'라는 감정을 마주하는 게 무섭고 두려웠다. 이 날도 자기 전까지 그 사람의 말들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어쩌면 내가 이제껏 일을 하며 온전히 행복함을 느낀 적 없는 이유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감정을 다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느꼈던 불안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 출근을 하면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다 알 수 없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고, 혼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대로 감동 받는 일도, 기분 좋은 말을 듣는 일도 있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어본다. 가능한 내가 좋게 생각할 수 있는대로 생각하며, 매일 매일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