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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im Jun 17. 2020

아침 7시, 현관 앞 도시락 6개.

엄마의 봄날과 나의 고추참치

최근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린 1980년대로 넘어가 '엄마의 도시락'을 소환했다.

중, 고등학교 모두 도시락을 갖고 다녔던 우리 3남매를 위해 엄마의 기상시간은 매일 5;30분.


이 날 언니는 오랫동안 삼켜왔던 말을 속사포처럼 쏘았다.

"엄마는 소시지 인심이 너무 박했어"

"뚜껑도 맨날 덜 닫아 도시락을 열 때마다 늘 긴장되고 어떤 때는 책도 물들었어. 김칫국물이!!!!"

근데 왠 걸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엄만 그때 맨날맨날 시장 가서 반찬 사고 반찬 하고... 얼마나 행복했는데~ 그때가 진~짜 좋았지..."라며 전혀 다르게 말을 받아치셨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의 울퉁불퉁한 식판 하나, 물통 하나, 수저통 닦는 게 어찌나 5일 동안 '일'스러운데 행복하셨다고!!!???

여름엔 밥통과 찬통, 수저와 물통 합이 24개고, 겨울엔 보온밥통에 국통이 추가되니 30개의 설거지가 나온다. 심지어 우리 가족은 늘 함께 아침도 먹어야 했다.


남편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잘 먹지도 않는 '고추참치'를 왜 자꾸 사?"

"난... 고추참치, 야채참치를 반찬으로 싸 온 애들이 그렇게 부러웠어. "

딱 한 숟가락 얹어 밥에 쓱싹 비벼 먹으면 이전에 먹어 보지 못했던 엄청난 맛이 참치 캔만 봐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언니는 소시지가 그렇게 부러웠고,

나는 랩에 쌓인 손수 구운 김이 아닌 바삭하고 정갈하게 쌓인 양반김과 양념 참치가 그렇게 부러웠다.

하지만 요즘 우린 서로 만든 나물반찬을 주말마다 바꿔 먹고 있다.


"근데 언니, 왜 소시지 반찬 싸 달라고 말 안 했어?"

"그걸 어떻게 말하냐? 미안하게..."

엄마는 "니들은 반찬투정 한 번 없이 얼마나 깨끗하게 도시락을 먹었는지 몰라... 호호호호호호호호"


지금보다 마음이 더 예뻤던 우리가 엄마 눈에도 예뻤나 보다.

매일매일 24~30개의 도시락을 채우고 씻던 나날이 엄마의 봄날이었다는 것이 아쉽기보단 모두가 서로에게 애쓴 그 시절이 아름답고 따뜻하다.


누구에게나 있는 이런 음식들이 참으로 귀엽다. 각자의 그 귀여운 음식을 먹으면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본인의 고유한 맛과 향, 분위기와 촉감을 찾을 수 있다.

나만의 고추참치캔을 따면 진짜 먹고 싶었던 소중한 엄마의 도시락을 마주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그간 봄날을 즐긴 엄마의 나날을 함께 기억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간질간질했던 행복한 젊은 우리 엄마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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