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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Jan 03. 2024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유튜브 올렸으니까 빨리 좋아요 누르고, 댓글 좀 달아줘!


언젠가 새벽마다 엄마의 카톡으로 잠을 깨는 날이 잦아졌다. 올해로 57세를 맞이한 엄마는 30대인 자식들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버거우면서 그런 엄마를 존경하고, 딸로서 걱정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 5시에 엄마의 하루는 시작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엄마는 건물 청소일을 시작한 지 이제 3년이 다되어간다. 처음에는 소일거리로 시작한 1층 화장실 청소가 2층 학원관리, 3층 무인 독서실 관리까지 이어졌다. 엄마를 건물 내에서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오후에는 엄마의 업무를 보다가 저녁에는 길고양이의 밥까지 챙겨주고서 10시가 되어서 집으로 퇴근을 한다.




10년 전, 우리 가족은 인천의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20년 넘게 살았던 서울 신림동을 떠나서 인천이라는 새로운 도시에 와서 우리 가족이 느낀 건 '추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재건축을 목표로 아파트를 구매했는데 그 시기에 아빠가 원했던 식당 장사를 하면서 가세가 조금 기울자 우리 가족은 서울집을 떠나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 집세가 나갈 걱정은 덜었지만, 적응은 또 다른 문제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이방인처럼 인천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본격적인 아파트 재건축 추진을 위한 아파트 입주자 모임에 가입을 하더니 회계업무를 보고 어느 순간에는 재건축 추진 위원장으로서 아파트 5개 단지의 피해보상과 재건축을 이끌어가는 '대표'가 되어 있었다.


나와 동생은 그것이 결코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재건축이라는 게 그리 쉽게 이루어질 리 없고, 이미 우리 아파트 주변에는 새로운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분양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다만 주변에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우리가 사는 노후된 작은 아파트에는 발파피해로 아파트 외벽에 금이 가고 부서진 흔적들이 선명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석면피해로 어르신들의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신 분들도 몇몇 계셨다.


하지만 현실은 인천 산동네에 위치한 이러한 이슈에 주목하거나 보상을 기꺼이 해주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선 것이었다.

노후화된 아파트 복도
대낮에도 조금은 어두운 복도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던 일들이었는데 점차 엄마가 앞단에 나가 구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청와대에 민원을 넣고, 시청 앞에서 의원들을 만나 탄원서를 넣고,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엄마의 활동을 알리는 일들이 계속되자 나와 동생은 덜컥 겁이 났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의 재건축을 반대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찾아와 '당신 때문에 집이 팔리지가 않잖아!' 라며 윽박을 지르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돈이 되지도 않는 일이었다. 매일 재건축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그리고 같이 계속 싸워서 피해보상과 제대로 된 입주권을 보장받기 위해 엄마는 주민 대다수가 어르신들임에도 매일 음식을 대접하거나 명절이면 단체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정말 자금이 부족할 때는 나와 동생이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매일 엄마는 900명이 넘는 채팅방에서 이슈와 진척되는 상황들을 공유하고 그날 하루하루 시위를 하거나 탄원서를 적거나 영상을 올리는 것들을 공유했다. 지지하는 사람들은 10명 남짓, 나머지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사계절을 세 번이나 겪으면서 굴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뿐이었던 유튜브에 200명, 300명 구독자수가 늘었다. 구청과 시청에서도 엄마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엄마가 답답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해서 언젠가 한 번은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물었다.



' 엄마,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잖아.'


엄마는 30대인 나보다 겁이 없다. 운전도 못하면서 인천에서 성남까지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러 다녀오고, 독수리 타법으로 입주민들과 탄원서를 함께 작성하고, 노안으로 시력이 점점 떨어지면서도 어떻게 배웠는지 숏츠 영상을 매일 올린다.


'힘들지만, 엄마도 아직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만약, 실패하더라도 괜찮아. 그러니까 엄마 걱정 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가끔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나의 부모가 하고 있는 걸 자식으로서 보고 있노라면 많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번번이 엄마는 힘든 내색보다는 '그래!? 그럼 엄마도 해볼까?' 하는 긍정과 도전으로 맞서 싸운다. 서른을 넘고서 겁이 참 많아졌는데 엄마는 그런 나에게 자극제가 되어주고 있다. '실패해도 괜찮아, 무의미한 일은 없어'



오늘도 혼자서 외로이 싸워나가는 신여사를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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