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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Jan 10. 2024

나의 권리는 내가 챙기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거절은 거절한다

며칠 전, 면접을 다녀왔다. 


아직도 쉬고 싶고, 쉬면서도 하루 24시간을 바쁘게 보내는 백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커리어 안에서 딱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물론, 아직 채용 공고가 활발하게 올라오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가뭄에 콩 나듯이 내가 원하는 직무의 채용공고는 너무나도 적다. 그 와중에 내가 희망했던 직무가 있어 이력서를 넣었고 약 2주 만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천에서 강남 중심부까지 거의 2시간이 소요된다. 우스갯소리로 서울여행하는 셈 치고 면접을 다녀왔다고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도착한 면접장 앞에서 시계를 보니 30분이나 일찍 도착하여 동네 한 바퀴를 빙빙 돌았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면접관도 나도 뻘쭘하다. 동네를 돌다 보니 내가 아는 동네였다. 항상 모든 이름 있는 회사들이 으레 강남에 모여있으니 내 거주지와 회사처가 어디이든 거래처에 맞춰 강남을 가는 일이 잦았던 시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강남 사람이 아님에도 강남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허름한 사무실보다 어지럽힌 산업 이슈들에 대한 책과 연구자료로 빼곡한 대표실이 눈에 더 들어왔다. 면접은 대표와 1:1로 진행이 되었다. 마치, 티타임을 갖는 것처럼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나의 이력이 인상 깊고 마음에 들면서도 같이 일을 해봐야 어떤 스타일인지 서로 파악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진솔한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면접을 볼 때, 솔직하게 대답을 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 솔직하게 답변을 했을 때 결과가 좋았던 때가 많았다. 그동안 지나온 회사에 대한 이야기, 퇴사 사유, 성장과 워라밸 중 내가 추구하는 것 등등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고 갔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 무렵 대표님께서는 흔쾌히 나에게 '정말 같이 일하고 싶네요. 당장이라도!' 라며 긍정의 답변을 주셨다. 감사했지만 두 가지가 남았다. 근무 시기와 연봉이라는 중차대한 협상이 남았다. 


- 대표 : 그래서 언제부터 같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나 : 저는 1월 중순 ~ 2월 초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대표 : 그럼 연봉 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나 : 직전 연봉과 동일한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봉 유지에 대한 나의 대답에 대표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어 말을 시작했다. 


- 대표 : 사실, 아시다시피 3월이 되어야 저희 자금 상황도 조금 풀릴텐데 먼저 낮춰서 시작하고 3월이 되었을 때 챙겨드리는 건 어떨까요? 


만약, 3년 전에 나였더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지만 몇 분만에 속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교감을 했다고 생각하는 대표의 부탁하는 눈빛을 보고 거절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단번에 연봉 유지가 아니라면 어차피 조금 더 쉴 계획이었으니 계획대로 조금 더 적합한 곳에 지원을 준비하며 기다릴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대표님의 제안도 나에게는 좋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순간의 감정으로 나를 수그리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과 정보들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정중하게 거절한 만큼 나의 의지에 대한 확고함을 대표님께서도 잘 알아주셨고, 나의 입사 처우를 고민 후에 연락을 주시겠다며 면접은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로 거절을 못했느냐면 '도를 믿으세요?'라는 종교인의 이야기를 길 한 복판에서 1시간 넘게 다 들어주기도 했다. 심지어 카페까지 들어가서 얘기를 들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회식만 잡히면 중간에 가겠다는 말을 못 해서 분위기상 끝까지 남다가 다음 날 피로에 찌든 날들도 여러 번이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 연봉을 유지했지만, 돌아오는 건 최초 연봉 계약이 잘못되어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날강도 같은 계약을 내미는 회사에 퇴직금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기도 했다. 인격모독을 하는 회사 대표에게 퇴사와 사과도 정정당당히 요구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다가 사직서를 찢기곤 등짝을 맞았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허허 웃으며 바보 같은 웃음으로 분노를 하는 것이 아닌 무안함으로 상황을 벗어나선 나 자신을 탓했다. 



그 이후부터 조금씩 나를 위해 '아니요' , '싫습니다'를 제대로 외치기 시작했다. 



물론 수시로 매번 '아니요'를 외치면서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을 줄 필요는 없다.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거절의 힘도 강해지는 법이다. 착하지만 일을 못하는 직원 vs 싸가지없지만 일을 잘하는 직원. 나는 후자가 되기로 했다. 착하면서 일을 잘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착하다는 건 사회에서 그리 좋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거절하지 못하면 착한 사람? 결국 그 거절을 못해서 내 일까지 미룬다면 착하지만 무능력한 사람이 된다. 


언젠가 일을 하면서 '싹수없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뒤에 따라오는 말이 '그래도 일은 잘하니까'였다. 그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거나 나를 비난한 상대의 말에 정당성을 심어주진 않았지만 점점 나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거절의 힘을 실어준 말이 되기는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모든 제안에서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결국 나를 생각하고 나를 걱정하는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나는 확고한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3월이 되어 회사 상황이 바뀌어 처음 내가 제안받은 연봉의 나머지 부분을 받지 못한다면? 그때 나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회사는 그저 나에게 미안할 뿐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이 없다. 겨우 들어왔는데 퇴사를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다니는 수 밖에는 없다. 


아이러니하고 웃픈 것은 '아니요'를 외치면서 자발적으로 싸가지없는 일잘러가 되고 보니 아무도 나의 '권리'와 '권한'에 대해서 부당하게 처리하거나 낮게 처우를 평가하는 일이 없어졌다. ( 싸가지가 없을거라면 일은 정말 잘해내야한다. 싸가지가 없이 일도 못하면 성격 파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 오히려 승진을 권유받거나 생각을 묻곤 했다.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예스'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에 대해 '예 / 아니요'에 대한 답을 했을 때 오히려 더욱 신뢰하는 경우도 있었고, 큰 프로젝트들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다. 


거절을 할 때마다 나는 단전부터 힘을 빡 준다. 거절의 상황이 싫으면서도 내 입 밖으로 꼭 내뱉어야겠다는 의지를 다니는 나의 습관 아닌 습관인 것 같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냥 할까?'라는 마음이 든 적도 여러 번이었다. 




거절의 선을 지키는 방법 또한 참으로 어렵지만 이제 나이 서른을 넘어서야 나는 나를 지키는 올바른 거절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거절은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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