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강한 바디 이미지
기억하기에 괜찮았던 몸무게는 45kg,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그 사이쯤. 이 무게가 꽤 무겁다고 생각했다. 무게의 잣대가 얼마나 가혹하냐면 키 160이 조금 넘는, 45kg인 여고생이 살이 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키는 인생에서 가장 큰 때가 다시 올 리 없다. 그러나 몸무게는 일생에서 가장 무거운 때를 매번 경신한다. 불행 중 다행은 산모 일 때 최고 무게 신기록 달성 후 그 무게를 향해 가고 있지 않다는 것. 산모라서 맘 놓고 먹으면 곤란하다. 살이 과하게 찌면 출산할 때 힘든 것은 물론 건강한 임신 기간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이론, 이상과 달리 현실 속 나의 살은 무럭무럭 자라나 무려 8X.XXkg에 이른다.
딸이 뱃속에서 놀고 있을 때, 무려 30kg, 아들은 첫째 출산 후 다 빠지지 못한 살을 갖고 있으므로 조심조심해서 20kg 정도 살이 붙었다. 아이를 낳았더니 아이 몸무게는 고작 3kg 초반. 양수 무게 얼마를 더해 아기와 포함된 무게를 생각해 본다 해도 어마어마했다.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씬하고 예쁜 산모가 되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살에 대한 '프레임'. 날씬하고 예쁜 산모가 되고 싶었던 마음, 평생 찔 줄은 모르고 45kg이 좀 쪘다고 생각하던 인식, 누가 알려주고 꾸준하게 교육받지 않았다. 은근하고 교묘하게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더라.
놀랍게도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의식은 물론 무의식까지 지배하기 위해 각종 매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르면 4세부터 푹 빠지게 되는
바로 이 언니들. 시크릿 쥬쥬다. 사람마다 타고나는 체형이 있고,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몸의 모양이 어떻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어른의 눈으로 본 그들의 모습은 분명 이상하다. 얼굴은 모두 비슷하고, 몸도 물론 모두 비슷하다. 몸은 지나치게 마르다 못해 앙상하다. 얼굴은 하나 같이 계란형이다. 기본 계란형에서 얼굴형이 살짝 길거나 짧거나 중 택일을 한 모양이다. 캐릭터의 눈을 조금씩 다르게 붙여두고, 머리 모양을 다르게 꾸몄다. 아이가 체형이 마를 수는 있지만 일부러 깡마르기 위해 노력하면 분명 속상할 테다.
꼭 날씬하지 않아도 괜찮다. 시크릿 쥬쥬와 같은 가녀린 몸도 굳이 필요 없다. 그런데, 아들이 어린이집에 잘 정착하니 운동을 해야지 싶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살도 빼고 건강도 찾을 겸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계단 오르기'를 시작했다. 살을 빼려면 덜 먹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어렵다. 살을 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육아는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굶지 않기로 했다. 꾸준히, 천천히가 목표다.
일주일에 세 번, 6개월, 60층에서 70층 사이
단기간에 한 두 달 하고 몸도 가벼워지고 근육도 붙고 건강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행을 바란달까. 일주일, 이주일 후 알았다. 살 빼기를 주목적으로 한다면 식사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평소보다 조금만 덜 먹으면서 좀 더 움직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6개월 이상은 해야 가능하겠다는 결론에 이른 다. 40층에서 50층은 조금 적은 것 같았다. 개인 블로그나 카페들에서 보니 운동량을 많게 하는 분들은 주 3회 100층, 매일 70층 정도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 체육과목은 실기와 필기를 더한 점수이므로 100점이 나오기 어렵다지만 100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처음 계단 오르기를 하던 날, 첫날은 15층씩 3회, 1층에서 8층까지 1회 오르기를 했다. 5층쯤 오자 벌써 숨 쉬기가 어려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몇 회를 셈하기를 반복했다. 한 번 덜할까, 몇 층을 덜 올라갈까 그런 생각들을 쉼없이 하게 된다. 2회 차를 오를 때, 이미 귀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이 쿵쾅 댔다.
그러는 중에도 소심해서 계단을 오를 때 쉼 없이 본다. 엘리베이터에 빨간불이 들어온다면 어느 층에 멈출까 누가 타는지 아닌지와 같은 동태를 살핀다. 최대한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지만 가끔 만날 때가 있다. 1층 엘리베이터 앞과 어느 층까지 오르기로 했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되었을 때는 좀 부끄러워서 엘리베이터 문 위쪽을 하염없이 보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히 얼굴이 터질 것 같을 때는 아직 마주친 일은 없다.
계단을 오르게 된 이유
결혼 6년 차, 결혼하던 그 해에 입던 바지는 이제 하나도 맞는 게 없다. 무릎까지라도 들어가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55 사이즈에서 정확한 66으로 거듭났다. 아이 낳고, 모유수유 끝나면, 둘째 낳고, 좀 여유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보자며 옷장 안에 고스란히 둔 예쁘고 편한 바지 몇 장은 아직도 옷 장 밖을 구경해 본 일이 없다. 아이 낳기 전과 후 나의 몸은 다르다지만 꼭 그 때와 같은 몸을 가질 필요는 없더라도 그 둘레들은 아이 낳기 전 나에게 가장 적합했던 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출산 기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돌려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많이 늦은 감도 있지만) 편한 옷만 즐겨 입는 사람이라 편한 옷만 찾게 되니 편한 옷에 맞춰 모든 신체 둘레가 만들어지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아직은 건강하지만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도 미리 살을 빼두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래서 건강에는 역시 요가!라는 생각에 결혼 전 후로 다니던 요가를 다시 해볼까 생각해 봤다. 그러다 살도 같이 빼려면 요가보다 스피닝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다가 통장 잔고와 마주했다. 매달 꾸준하게 적자에 시달리는데 먼저는 꼭 돈을 쓰지 않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야겠더라. 요가, 스피닝, 헬스 모두 등록을 할 수는 있지만 주 몇 회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다.
시간의 문제도 있었다. 운동을 오가는 시간, 아이들 등 하원 시간을 계산해 봤을 때 이런 시간 저런 시간 따지다 보면 결국 운동을 못 가는 날도 있겠다. 보통은 수업으로 이루어지는 운동을 선호해서 수업시간을 맞추려 하다보면 시간이 전혀 맞지 않아 못하는 날도 있겠다. 게다가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집안일은 반드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집안 일도 꾸준히 하려면 계단이 좋을지 어떤 운동을 등록하는 게 좋을지 장단점 비교는 확실히 된다.
운동을 해보니 어느 스포츠센터를 다닐 때처럼 일부러 외출을 위해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서 좋고, 눈썹을 그릴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아서 좋다. 편한 옷 아무거나 입고 오직 바른 자세로 오르면 되므로 올라간다는 행위 외에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아서 좋다. 오르면서 이런 생각 아무 생각을 비롯해 아파트 층수에 따른 시선의 변화 몇 층에서는 어디가 어떻게 보인다를 생각하는 것도 나름 매력이다. 엘리베이터가 어디에서 멈추는지를 자꾸 신경 쓰는 소심한 내가 우습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덜 받게 되는 것도 같아 이 또한 좋더라. 타인의 시선은 운동을 하기 위해 모인 곳에서는 어디든 약간은 신경을 쓰게 되니까.
깡마를 필요는 없지만, 건강한 몸은 필요하니까
그래서 시작한 계단 오르기,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던 지난 20개월 정도의 시간. 계단을 오르면서 생각도 하고 계단도 오른다. 3개월 뒤, 6개월 뒤 한 번쯤 계단을 올라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다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이제 3주 차에 접어드는데, 기상시간이 정확해졌고 운동하기 전에 비해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가뿐한 편이다. 그토록 신경쓰지 않는다 외치나 온몸으로 신경 쓰고 있는 무게는 음식을 줄이지 못해 1.5kg 정도 줄었다. 3개월 후, 6개월 후 나의 계단 오르기 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육아를 하면서 두 아이에게 다이어트하느라 힘들고 지친 엄마가 아니라 건강한 몸을 위해 부지런히 신경 쓰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오늘도 많이 먹었다. 먹어서 죄송합니다 류의 반성 노트가 아니니 여기까지 (내일은 즐거운 초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