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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Jul 10. 2017

곧 두 번째 출산

서른,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020


꼭 2년 전, 생각해보면 제법 용감했다. 모르면 용감하다는데, 그저 나는 뭘 몰라서 용감했다. 남편은 출산 2주 전 해외 학회에 제출한 논문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 미국으로 떠났고, 불안하긴 했지만 당연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남편을 보냈다. 남편이 미국에 도착하고, 도착한 남편과 하하호호 웃으며 통화하던 중 누워 있는 중에 엄청난 양의 물이 뜨뜻하게 하반신을 적셨다. '이거 일이 났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전화를 끊고, 병원에 전화했다.


염려 가득한 나와 달리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무미건조했다.

"그럼 병원으로 오세요."


나에게는 처음 있는 불안의 순간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오늘도 어제와 같이 주어지는 의료행위의 일부였다.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사업 미팅으로 함께 출장 중이라며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엄마는 상당히 불안해 하긴 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출산이라는 여정에 애초에 엄마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로 2년 전, 애석하게도 시어머니와 출산의 과정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심적으로 약간의 위로가 된 건 진통하는 과정 중에 동생이 급히 와주었다는 것, 비가 오고 마음이 울적하니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우리 엄마가 제일로 잘 한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그런 것, 당연 아니다. 제일 잘 한 일은 나를 낳고 출산의 고통을 두 번이나 감내하면서 동생을 낳은 일이다.   


정확히는 23개월 전 있었던 출산의 기억을 블로그에 남겨뒀더라. 출산에 대한 기록을 찬찬히 읽어보니 어째 '참았다'는 표현이 거슬리게 많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되고 재편집되는 속성이 있다지만 진통하는 과정을 아이를 만나는 과정으로 여겼다기보다 '참아야 하는'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에 셀프 위로를 할 수밖에. 이렇게 아픈데 시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20시간이 넘는 진통 과정 중에 함께 해주는 동생의 피곤함이 신경 쓰여 다른 병실에 가서 자도록 했던 그 시간, 혼자 차가운 병실에서 진통을 하며 토하고, 아파하던 그 시간이 결국에는 서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양수가 터지고 20시간이 넘게 지났으나 자궁문은 결국 2cm가 열렸을 뿐이었고, 진통 중에 찾아오는 내진 시간은 내진을 시도하는 의료진들을 발로 차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정도로 사람을 날카롭게 했다.


겨우 2cm 열렸을 뿐인데 이 정도라면 10cm 열리면 나는 죽겠구나 싶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과 진행은 모든 산모가 각각 달라서 이웃집에 사는 어느 언니는 5cm 열렸는데도 할 만하다 생각했다던데. 어쨌든 딸을 만나게 된 결국은 의술의 힘이었다. 자궁문이 열린 상태는 계속해서 딱 그 정도라 양수가 터지고 26시간이 지나 제왕절개를 했다. 아이를 만났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출산이라는 인생의 '큰 일'은 다행스럽게 무사히 지나갔다.






자연분만 일시불, 제왕절개는 할부


물론 확실한 사실 하나는 출산 이후 고통의 시간이 여전히 있었다는 것. 엄마들이 웃자고 하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제왕절개는 할부란다. 배를 갈라 아이를 낳고, 꼼짝 않고 누워 있기를 24시간. 자연 분만한 산모들은 출산 후 몇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물에 샤워도 하던데 진통은 진통대로 20시간 넘게 해서 땀에 절어 있는 상태에서 5일 후에 샤워를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재앙에 가까웠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가축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 5일. 급한 대로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기는 했으나 그 찝찝했던 기억은 여전하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개역한글 성경 창세기 3:16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란 걸 '출산'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연분만을 성공했던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더라. 아이가 산도를 따라 내려오고 아이 머리가 빠져나올 수 있게 열린 자궁문으로 아이가 나오는 순간 모든 고통이 잊힌단다. 그렇다. 딸을 만나는 과정에 이르는 동안 스물몇 시간의 진통이 어마어마했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아팠는지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 또한 망각의 동물이자 포유류로서 둘째를 임신했다. 나는 쓸데없이 예민하여 나에게 해산의 고통이란 또다시 착상의 순간부터 시작됐다. 또다시 긴 입덧 기간이 있었고, 딸과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뱃속에 꿈틀대는 태아에게 무신경함에 대한 미안함.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미안할 뿐인 시간을 지나 살짝 살만한 임신 중기를 거쳐, 임신 후기 30년 평생 이렇게 더운 적은 없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하는 아주 뜨거운 여름을 지나 이번 주 목요일 아이를 만나러 간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출산이라는 인생 계획이 할부로 지불될 예정이라 오히려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할부를 감당하기에는 벅찬 현실.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딸은 누가, 어떻게 꾸준히 케어할 것이며,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서 꽤 오래 입원해야 하는 산모는 언제,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조를 짜느라 분주하다.  




남편에게는 100번 정도 말한 것 같은데,


셋째는 절대, 아니야



셋 까지는 괜찮다던 남편도 아이 하나 케어하면서 임신한 아내 수발드느라 지쳐 0.1초 만에 수긍한다. "우리에게 셋은 역시 무리일 것 같아."






그럼, 출산 후에 봅시다 :)

이번에는 할부라 미리 깨끗하게 씻고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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