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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Sep 02. 2019

다섯 살, 다시 애착

어느 날 찾아온 분리불안 극복기, 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A to Z


애착

우리의 애착관계는 제법 튼튼하고, 견고하다 굳게 믿던 엄마에게 찾아온 분리불안 극복기.



사건의 발단은 어린이집 방학 전 날 일어났다. 그 날은 어린이집에서 물놀이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미열에서 고열 어디쯤을 오가는 아이를 원에 보내기가 망설여져 아이를 데리고 외부로 볼 일을 보러 다녀왔다. 외출 후 지친 엄마는 아이에게 TV를 보여주다가 이제 동생을 데리러 가자고 했다. 딸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겠다 한다. 몇 번 같이 가자고 하다가 효율적인 면, 얼른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예전과 달리 이제 잘 있겠지 싶어서 둘째를 데리러 다녀왔다.


그런데 아이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길었나 보다. 다녀왔더니 딸은 미술놀이를 함께 하려고 준비 해 둔 드레스 도안을 빨간 색연필로 칠하며 울고 있었다. 아차 싶었고 미안했다. 간단하게 사과 후 저녁을 먹고 놀이도 하고 그 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은 어린이집에서 오전 시간에 외부 견학을 가서 짧게 활동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 다음날부터는 방학이었다. 무려 한 달 전의 나는 간단하게 사과하고 지나간 일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사과는 무척 심플했다. 힘들 일과를 마친 엄마, 하루 종일 함께 있었던 딸, 이제 하원 해서 이것저것 요구하는 아들. 두 아이를 위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라고 변명해 봐도 이미 아이는 극도로 불안한 상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잊었다. 두 아이의 방학은 상상 이상, 기대한 것 이상 고단했다. 하얗게 까맣게 잊을 만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개학 후 아이는 살살 등원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하나를 들어주면 두 개, 세 개, 네 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짜증도 났다. 이제 아이들이 다시 등원하기 시작했으니 밀린 집안 일도 하고,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좀 해보고 싶었다. 개학 후 하루 이틀은 아이 생일 파티와 견학 일정이 있어서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원에 보낼 수 있었다.


그러기를 삼일 째, 아이는 도망 다니고 울고, 뿌리쳤다. 첫날은 당황해서 갑자기 왜 이러지 싶어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은 어린이집 선생님께 혼나서 가기 싫다고 거짓말도 하고 엄마가 없으면 무섭다고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오기 싫다고 하고, 그 다음날부터는 옷을 입히려면 울고 온 몸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분리불안


어린이집 선생님은 방학기간 동안 별 다른 일이 없었는지 물었다. 잊고 있던 일이 떠올라 말씀드렸다. 이제 시작인가 싶었다. 집에서 아이는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엄마와 단 둘이 있으니 엄마가 스티커 북으로 활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다가 졸아도 옆에서 조용히 하던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밥을 먹을 때면 옆으로 다가와 간식거리를 먹겠다며 함께 먹었다. 평소와 같았다.


그래서 몰랐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가 원에서 예전과 다르다는 말도 그래서 조금 다르겠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아이의 격렬한 등원 거부가 있기 전까지 그랬다. 원에 상담을 가서 아이가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려 한다는 것, 선생님의 부재를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듣고 화면을 통해 보고 알았다.


그제야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다 들어주고, 받아들여 주고, 맞춰줬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하원 시간을 더 앞으로 해 달라며 떼쓰는 행동을 반복하는 일, 동생을 칭찬할 때면 불 같이 화를 내며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일, 굳이 가지 않아도 집에서 잘 놀더니 갑자기 친척 언니네 집에 가서 놀아야 된다며 서럽게 울며 끊임없이 요구하던 모습, 애착 인형이 하룻밤쯤은 없어도 태연하던 아이가 친척 집에 두고 온 인형이 없다며 차 안에서 소리를 격하게 지르며 난리를 치던 일.


마음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저 아이의 문제 행동에 집중하며 아이의 감정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나를 들어줬더니 몇 배를 더 내놓으라 한다며 괴로워했다. 나와 딸은 '이런 적이 없었는데'라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신념으로 일관하며 아이와 대치하고, 협박하고, 짜증내고, 그러다 타이르기를 반복하는 그런 엄마,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아이는 부모한테 끊임없이 뭘 요구한다. (중략) 아이의 요구가 정서적인 것임을 부모가 알아채지 못하면, 행동은 더 심해진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코리아 닷컴


아이가 두 돌 무렵, 처음 어린이집 적응을 하던 때처럼 다시 시작했다. 아이가 다니는 기관의 원장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 한 내용을 계속해서 기억하려 노력했다.  

먼저는 그 날 있었던 일을 다시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괜찮다고 아이의 감정을 다독여 줄 것. 다음은 등원할 때 엄마와 하원 시간 약속을 할 것, 그 시간에 꼭 맞춰서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올 것.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되었다. 둘째가 없는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만들 것. 아이와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마트를 가거나 꼭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좋으니 아이와 함께 보낼 것. 엄마의 일상이 많이 바빠지면, 다시 예전처럼 하원 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할 것.




엄마의 효율을 내려놓은, 효율성 0 라이프의 시작


아이와 나에게 필요한 건, 둘 만의 시간이었다. 둘째가 돌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나마 가능했던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사라진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에 둘을 보면서 일과를 해결하는 수월함이 내겐 너무 달았다. 달달한 수월함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이와 일대일로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이가 지금 다니는 곳을 졸업하기 전까지 딸의 하원 시간은 한 시간 이상 앞당겨 아무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

딸을 먼저 하원 하고, 아들을 하원 하러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첫째를 하원 하면서 엄마가 가는 시간, 가서 기다리고 아이를 다시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합 30분. 집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첫째 아이와 함께 둘째를 데리러 간다.



마트에 함께 가서 장을 본다, 딸과 함께 미술놀이 재료를 사러 간다

글을 읽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된 딸을 위해 장을 볼 목록을 적은 종이를 딸에게 준다. 갑자기 생각난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으려 하면 딸은 온 힘을 다해 엄마를 저지하려 애쓴다. 장 볼 목록이 몇 개 없으면 엄마 머릿속에 넣어뒀다가 마트에 가서 직진해 장바구니에 착착 넣어 30분 안에 해결될 장보기가 딸과 함께 가면 3배 정도는 거뜬히 더 걸리고 체력 소모도 상당하다.



딸과 함께 설거지를 한다

집안일을 할 때 함께하는 것은 서로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기에 도움이 된다. 아이가 설거지라는 임무에 충실하기보다 물장난에 집중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아이 앞에 앉아 있기

세 돌 전, 딸과 함께 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시간도 제법 된다. 아이가 의자에 오르기를 할 때면 넘어질 것 같은 순간에만 잡아 준다거나, 아이가 산책을 할 때면 조용히 뒤를 따라다니거나 그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닌 그 일상들이 쌓여서 튼튼하다고 자부할만한 관계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다시 하고 있다. 딸이 어느 정도 말이 통하면서부터, 그리고 두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바쁘다고 생각하던 때부터 아이 앞이나 옆을 지키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원 후 한 시간만큼은 다시 해보려 한다.



그 외에도 다음 두 가지는 앞으로도 계속되며, 노력해야 할 것들이다.


칭찬할 거리는 놓치지 않고 기억해둔다. 때에 맞는 칭찬의 말로 애정을 표현한다

딸은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칭찬을 많이 해줘야 이 시기 자존감이 쑥쑥 자란다는데, 아들을 돌보느라 체력적, 정신적 한계를 이유로 칭찬을 아끼게 되더라. 그래서 이제 꼭 기억해 뒀다가 이야기해주고, 바로 해줄 수 있는 칭찬은 바로 해주기를 실천하고 있다.


덩치가 크거나 시간이 많이 드는 집안일은 아빠가 집에 있는 주말에 한다

살림을 원래 깔끔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에 다니고부터는 이제 좀 해보려 욕심을 부리던 중이었다. 그러나 다시 선언했다. "집안일은 주말에 할게." 화장실 청소, 옷가지 정리 같은 덩치 있는 집안일은 아빠 있는 주말에 하기로 한다.



 우리는 인생의 몇 년을
어린아이들에게 주어도 될 만큼
우리 인생은 충분히 길다


아동심리학자 스티브 비덜프의 말이다.

올해 9월 대학원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6월쯤, 이렇게 저렇게 반복해서 고민하다가 복학 대신 제적을 선택했다. 다시 내년 9월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제적 후 재입학이 가능하다기에 내린 선택이다. 어쩌면, 큰일이 됐을지도 모를 일을 겪고 보니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구나 한다. 딸과 함께 하루 30분을 집중해서 보내기를 실천하고 1주일이 지났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더 이상 선생님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선생님의 부재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며, 혼자서 도 잘 탐색하고 친구들을 마주 보며 웃는다. 집에서는 예민한 동생의 짜증을 의연하게 받아 줄줄 아는 누나다. 그리고 동생의 장점도 함께 칭찬해 줄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체력과 여력에 맞게 생활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긴 시간을 버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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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발명품도 엄마 냄새와 온도를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대체품은 없을 것이다.

엄마냄새, 이현수,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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