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습관, 아이의 습관
그건, 엄마가 습관을 잘못들여 애를 키우고 있는거야.
아이 둘을 키우며 매일을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던 엄마가 듣게 된 육아참견이란다. 속이 쓰리지만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고백하건데, 나 또한 한 아이만 키우고 있다면 위와 같은 생각을 꼭 했을테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마음 가득한 열정과 그 열정을 어느 정도 받쳐줄 체력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
속이 쓰린 육아 참견을 듣게 된 이유는 아이들에게 하루 평균 3시간, 어느 날은 그 이상 TV를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옳은 말씀을 전해 준 그녀의 친구는 한 아이의 엄마다. 쓰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어쭙잖은 옳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보여주는 행위 자체가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걸 엄마들은 다 안다. TV라는 물건이 처음 나왔을 시절의 엄마들은 그렇지 않았다지만, 요즘은 다르다. 독인 줄 알면서도 자꾸 들이민다. 그러나 습관을 잘 들이는 일은 아이가 한 명일 때나 온전히 가능하다는 걸 매번 느끼며, 머리박고 좌절하는 나 같은 엄마도 있달까.
푸념을 써본다. 엄마도 사람이라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싶다. 그리고 뭐라도 대충 입에 넣어 허기를 달래고 싶다. 화장실도 가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은 눈을 뜨면서 부터 민원이 제 각각이다. 한 명은 화장실을 간다하고 한 명은 간식을 달라하거나 물이나 우유를 쏟았다. 기저귀에는 이미 응가가 가득한 상태로 물이나 우유를 달라고 할 수도 있고. 아이가 둘이면 이 민원은 거의 동시에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혹은 두 아이가 싸우고 있거나. 이 상황을 365일 겪어내며 모든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낸 사람만 알 수 있는 고통을 아이가 하나일 때는 몰랐다. 오죽하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스스로를 민원 24시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그랬던 것처럼 그녀들이 공감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직접 체험한 한계상황에 대한 감정과 '그렇다더라'로 듣거나 알게 된 공감의 그것은 다르다.
계속해서 상황에 밀리고 밀리다보면 우울하다. 이 상황을 잠시 멈추게 할 가장 좋은 방법은 TV와 스마트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키우니까라고 합리화하며 마냥 TV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정한 우리 아이들에게 TV만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심하게 자책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으나 좋은 습관을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는 것, 그것이 육아다.
TV를 보는 것, 습관 맞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부터 일정한 시간 예를 들면 저녁식사 후 8시 30분 이후에서 9시 30분 사이에 종종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틀어 보여줬다. 어느날, 친구집에 놀러가서 저녁 늦게 까지 놀던 딸은 (TV를 가리키며)"뽀로로" 라고 말하더니 그 집 쇼파에 앉았다. 정확히 8시 40분이었다.
두 돌 전후, 시간과 숫자를 모르는 어린 딸이 정확한 시간에 TV를 보자고 하니 놀랐다. 밥먹고, 화장실가고, 잠들고, TV를 보는 모든 것이 습관이더라. 딸은 둘째가 태어나고, 둘째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마냥 길어질 때면 TV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아빠가 늦게 옵니다) 그러다 마음 속 가시 같던 TV 시청시간은 둘째가 돌 이후 낮잠도 제법 규칙적으로 자고, 밤잠을 깨지 않고 이어서 길게 자게 되면서 부터 획기적으로 줄었다. 둘째가 두 돌 쯤 되어서야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TV를 가까이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먼저는 둘의 취침시간이 같아졌고, 같은 밥을 같은 시간에 함께 먹을 수 있게 되면서다. 다음은 두 아이가 모두 어린이집에 가게 된 것, 마지막은 아이들이 어른 없이도 둘이서만 놀이를 할 수 있게 되면서다.
등원 전 그리고 하원 후 저녁 식사 준비할 때 매일 일정한 시간에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최대한 적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아래와 같다. 엄마도 일상 생활에 적게 보여주기를 생활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조사 결과와 연구결과 대부분 18개월 이상 아동에게 2시간 이하 시청할 것을 권한다. 물론 하루종일 1분도 안보면 좋겠지만, 봐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최대를 정하고, 매 순간 엄마가 확인해야 한다. 2시간을 최대로 정하고 넘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기대할 수 있는 즐거운 그림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둘이 노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시도때도 없이 싸우기만 하더라.
어릴 때부터 함께 노는 법을 알려주고 엄마나 아빠가 두 아이와 함께 놀기를 반복적으로 했더니 어느 날부터 둘이 놀기 시작했다. 둘째가 아직 뭘 모르는 두 돌이라 협동을 해야 하거나 규칙이 까다로운 놀이는 불가능하지만 어느새 역할놀이는 제법 한다. 두 아이가 역할놀이를 하려면 엄마나 아빠도 극 중 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어른의 연기를 통해 아이들은 어떻게 놀이하는지 익힌다. 어른이 놀이에 개입되어 있으면, 어른의 상호작용을 두 아이가 모방을 하기도 하면서 놀이가 지속될 수 있다.
두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하루에 TV를 한시간 내 혹은 미디어 없이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딸은 혼자 있을 때 그림을 그리거나 조용히 책을 보거나, 퍼즐 맞추기를 한다. 아들은 아직 많은 부분 만들기와 미술활동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 하지만, 앞으로 소근육이 더 발달한다면 클레이, 퍼니콘 만들기를 더 잘하게 될테다. 아이들에게 맡겨줄 소일거리는 블럭을 쌓거나, 물건을 넣고 빼기, 모든 물건 쌓기, 팝아티 등의 구슬끼우기 등 소근육 발달에 좋은 활동들이 있다.
TV 시청을 하는데 한 몫하는 부분, 집안일이다. 엄마가 집안일을 나홀로 고군분투하며 해내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하다. 우리집은 엄마의 멘탈이 허락한다면의 최대치까지 더럽다가 다시 깨끗해지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청소기도 밀고 해야 하니까, 안 치우기는 어렵다. 더러운 것이 익숙한 엄마라 가끔 미안할 때도 있지만, 엄마도 사실은 집안일 하려고 태어나지는 않았달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엄마가 치울 때 장난감을 통에 넣어보자, 쓰레기를 모아보자, 정리를 해보자고 한다. 효율면에서는 떨어진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TV 보여주고, 엄마가 혼자 정리하는 것보다 좋은 습관이긴 하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다
마음 속의 규칙 중 가장 상위에 있는 규칙이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거나 영상을 볼 일이 생기더라도 아이들은 기기 조작을 절대 할 수 없다. 돌 이전 부터 당연 스마트폰은 엄마 아빠의 물건이고, 아이들은 만져서는 안된다고 알려줬다. 아직까지는 통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부터 상황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최대한 버텨보려는 심산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더라도 반드시 어른이 골라서 볼 수 있게 한다. 스마트 폰으로 영상을 보는 일은 손에 꼽는다. 이발, 미용을 해야 할 때나 공공장소에 가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때 30분 이내다.
10년 후, 30년 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생각하는 뇌는 스마트폰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아이와 70, 80, 90년대 부모의 가장 큰 차이가 스마트폰의 존재 여부다. 부모세대는 스마트폰이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심심함을 안다. 심심해야 생각도 하고, 감정도 키우고, 놀이도 궁리해본다. 2019년, 지금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엄마는 아이의 심심함을 잘 바라봐 주고, 다독여주고, 심심함을 같이 고민해봐야 하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의 민원이 두렵다. 그래서 오늘도 싸우자, TV야.
브런치는 현실육아, 인스타는 감성육아 (... ) 맞나요?
현실이 너무 퍽퍽해서 감성을 생각해보려고 시작했습니다 :) 감성은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요?
https://www.instagram.com/sodam_cos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