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면 이토록 소중한 오늘
죽음, 어떻게 살아갈까를 뛰어넘는 질문이다. 나의 죽음이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것. 죽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빛난다. 모든 생명체는 유한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모두에게 주어진 순간은 가치를 갖는다.
<죽은 자의 집 청소>, 남편은 책을 흘끗 보더니 죽은 다음에 치우려고? 했다. 인생을 '청소'라는 노동에 힘겨워하지 않기로 생각은 했다만 청소를 게을리하면 일상에 효율이 떨어진다. 살아 있을 때 청소는 삶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함이지만, 그래 죽음 이후에도 청소가 필요하다.
죽음 이후에 행해지는 서비스. 저자는 누군가 죽어야만 일을 맡고, 이 일을 해서 생활을 유지하는 특수 청소부다. 인간은 아무리 고귀한 척, 교양을 갖추고, 고결한 것, 아름다운 것들로 포장을 하더라도, 그 누구도 배설해야만 하는 것들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 소변을 10시간 이상 참기 힘든 건 누구나 인정할테고, 변을 보기 싫다고 먹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살아야만 한다면.
인간이 그런 존재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죽음 이후 모든 생명체가 있던 자리는 청소가 필요하다.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채우려면, 꼭 그러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준 책도 아니지만, 어떤 죽음 앞에 한없이 숙연해지는 시간이었다.
사회의 문제가 된다는 고독사, 외로운 죽음. 죽음 그 자체는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모두 찾아온다지만 어떻게 죽을지를 전혀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 삶의 벼랑 끝에서 외로운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죽음 앞에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묵직해진다. 지금 꼭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일들을 미뤄뒀음에 안심했고,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하루 10분씩이라도 더 듣기위해 선택한 것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무얼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안부를 물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에 감사한 날이다.
문장들이 참 좋았다.
<죽음의 에티켓>,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다음 독서 리스트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김영사
사실 내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가 가져다줍니다. 그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내 비즈니스는 성공하지요. P 6
당신은 없지만 육체가 남긴 조각들이 천연덕스레 기다립니다. P 7
두려움은 언제나 내 안에서 비롯되어 내 안으로 사라집니다. 한 번도 저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P 9
이력이라곤 단 몇 줄뿐, 여백을 많이 남긴 이력서는 그녀가 짓는 풍부한 표정과 좋아하는 음식과 오랫동안 따라 부른 노래와 닮고 싶었던 사람과 사랑하는 친구의 옆 모습에 대한 기억은 담아내지 못한다. P 18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P 27
이른 아침부터 끌어모은 쓰레기는 태양이 왜소해지고 산마루에 엉덩이를 앉힐 무렵에야 가까스로 모두 트럭에 실어 보냈다. P 37
고급 빌라나 호화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 P 41
가난은 가난과 어울려 다니며 또 다른 가난을 불러와 친구가 되고, 부는 부와 어울리며 또 다른 풍요를 불러오는 것 같다. P 42
가난한 자에게도 넉넉하다 뿐인가, 남아 넘쳐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편물이다. P 43
달리 생각해보면 가족은 연락을 끊어도 채권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셈이다.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 P 44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P 46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해 불가의 쓰레기를 수습하러 온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곳에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고, 지금 나는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는가? 그는 왜 나라는 인간에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굳이 내 판단의 사슬에 그를 옥죄어야만 하는가? P 65
생각해보면 참 지저분하고 냄새가 고약한 꿈이다. 그런 꿈같은 생각을 하자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원래 이 집에 있던 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이 함께 사라진 듯하다. P 67
지구 생태계에서 구더기야말로 죽음에서 생명을 얻는 가장 역설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P 79
약해지면 목숨을 거두어가는 야생의 법칙은 피할 재간이 없지만, 최소한 길고양이들은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 자기 삶을 이끌어가는 주인이다. P 82
고양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섬겨야 한다는 정설을 깨뜨리러 세상에 왔다.
서른여덟에 세상과 작별을 고한 록커가 남긴 이 문장이 지금 나에게 정론이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따위는 없다. 더 높은 인간과 그를 섬겨야만 하는 낮은 인간이 없는 것처럼. P 85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폐색전증 같은 허파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이삼 일만 내버려두면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목을 매고 숨을 거두면 직립한 채로 늘어진 사체가 근육을 조절하는 힘을 잃은 탓에 온갖 오물을 배설해 놓는다. P 97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지하 방에 관해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P 101
인생이란 것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함께 먹고 살려는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P 119
우리는 그저 우연히 같은 해에 이 나라에 태어나, 당신이 좀 더 일찍 죽었고 나는 아직 살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서둘러 경험한 죽음을 향해 나 역시 잠시도 지체하지 못하고 한 걸음씩 다가설 뿐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그렇게 예외없이 죽음을 고스란히 맞이합니다. P 128
금파리가 공중에서 윙윙거리고, 살 오른 구더기가 모퉁이마다 꾸물거리고, 송장벌레와 진드기가 기어다니는 곳에서 '특별함'이라는 왜소하고 부질없는 조각들을 찾아서 줍느니, 태풍이라도 소환해서 남겨진 발자국을 지우고 싶다. P 138
또 콘샐러드 같은 흔한 사이드 메뉴처럼 "왜 이런 힘든 일을 하게 되었나요?"라며 천연덕스럽게 마이크를 갖다 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마다 혹시라도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용맹스럽게 답하는 자가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P 143
사람이든 고양이든 척추를 가진 포유류가 썩는 냄새는 한번 경험하면 다른 냄새와 오인하지 않을 만큼 고유하다. P 150
밤새 꺼지지 않는 대낮 같은 조명 아래 입 없는 식물은 아우성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시들어갈 것이다. P 154
성장을 멈춘 줄 알았던 내 아량도 어느새 회복되어 다시금 거만해졌다. 그렇게 내가 개를 키우는지 아니면 개가 나를 키우는지, 이웃이 개를 키우는지 혹은 그 이웃이 나를 키우는지 알쏭달쏭한 시간이 흘렀다. P 206
심려 깊은 자여, 어느 날 부질없이 근심이 일어나면 그날로 후후 불어버리자. P 210
지상의 그 어떤 더럽고 난처한 것도 군말 없이 받아주는 한량없이 너그러운 존재가 있다면 바로 변기일 것이다. 나는 웬만해선 이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다.
어째서인지 인간의 마음도 더러운 화장실 청소처럼 얼마간 곤욕을 치르고 나면 잠시나마 너그러워지고 밝아진다.
평소 우울감에 시달려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를 추천하고 싶다. 그 화장실이 더럽고 끔찍할수록 더 좋다. P 220-221
'돈처럼 인간의 감정을 송두리째 뒤집고, 흔들고, 들끓게 하는 것도 없구나'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중략) 진실을 자백하길 강요하는 몹쓸 부적이라도 된 것처럼 그 앞에서 수많은 인간이 무릎을 꿇고 저열한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P 225
돈을 더 달라고 죽이고, 돈이 없다고 무시해서 죽이고, 주기로 한 돈을 갚지 않는다고 죽인다. P 226
수많은 자살 현장을 오가며 죽은 자의 직업과 자살을 감행한 도구가 때때로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낯선 것을 찾기보다는 자기에게 익숙한 것, 일상에서 가까운 것을 자살도구로 선택한 것이다. P 234
호모파베르
살아 있을 때의 생계 수단이 한순간 죽음의 도구로 전락한 채 발견되는 자살 현장과 일맥상통한다. P 236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곳이 어디든 가서 군말없이 치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만 정작 제가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수도꼭지를 닮았습니다. P 248